아픔의 공유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가장 극명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내 아이가 아플 때이다.
타인의 고통 정도를 내 경험으로 미루어 추측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더하여 ‘저 아픔을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은 감히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아이가 아플 때마다 부모는 그 고통은 대신할 수만 있다면 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아이가 다시 건강해지는 순간까지 반복한다.
극 T의 성향을 가진 나는 아이의 아픔 앞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모든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열이 나는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바보가 된 어른일 뿐이었다.
특히 대부분의 병원문이 닫는 밤이면 나의 불안함은 이성 따위는 잊은 채로 마구 요동쳤다.
오히려 이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차분하게 아이 곁에서 아이의 상태를 살피며 지켜본다. 평소 덜렁거리는 아내의 모습을 놀리곤 하는데 이런 아내를 마주하면 나는 아내에 대한 경외심마저 든다.
그래서 엄마가 아빠보다 강한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저 침착함 속에는 아이의 회복에 대한 강한 믿음과 아이를 지키겠다는 강한 신념 같은 것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도 밤새워 공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내가 아이를 위해서 밤새 곁을 지키는 것을 보면 부모라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그래서 새벽에 아이를 간호하다 너무 피곤할 때면 이 녀석이 나중에 커서 이런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굴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2배 3배는 더 아프다. 부모의 모든 일상이 멈추고 오로지 아이만을 향하게 된다. 그래서 매일의 나의 기도는 사랑하는 내 아내와 아이의 영육의 건강함이 빠지지 않는다.
며칠 전 인후염으로 고생하던 아이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2023년 8월 27일
인후염으로 며칠째 40도의 고열이 오르내리는 로운이
어느 때보다 쉼이 필요한 오빠를 위해
낮잠 시간이 되어 칭얼거리는 로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산책 행이다.
엄마와 아빠 둘 중 누군가는 나가야 하는 상황
누가 나가고 누가 남을 것인가
로운이에게 물으니
나의 예상과 달리 아빠가 남아달라고 한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괜스레 기분이 으쓱하다.
오늘은 나의 짝사랑 고백이 성공한 듯하다.
오늘 밤은 좀 더 힘을 내서 아이 곁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