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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파파 Sep 21. 2023

오버핏

아이의 자람과 비례하는 부모의 성장

아빠에게는 위로 누나 셋과 형 둘이 있었다. 그중 막내 누나 즉 나에게는 막내 고모를 어릴 때 늘 오페라 고모라 불렀다. 왜 오페라 고모였냐면 오페라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옷과 화장 그리고 풍채를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때는 정말 막내 고모가 노래를 한다면 오페라를 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페라 고모는 중학교 입학 선물로 백화점에서 나이키 브랜드의 패딩을 선물로 사주셨다. 90년대에 백화점에서 10만 원을 넘게 주고 산 패딩이니 지금 생각하면 꽤 고가의 옷이었다.  

        

2022. 12.5. 로운이의 최애 패딩은 노란색의 오버사이즈 패딩이다. 얼른 이 패딩이 딱 맞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문제는 한창 성장할 나이에 비싸게 주고 사는 만큼 오래 입으라는 의미로 원래의 사이즈 보다 2치수 정도는 컸다는 것이다. 패딩은 디자인 자체도 펑퍼짐한데 2치수나 큰 옷을 입은 나는 바람이 가득 들어간 짐볼 같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에는 그 바람에 두둥실 떠다닐 것만 같았다.     


옷의 원단이나 마감이 워낙 좋아 나는 그 옷을 10년 가까이 입었다. 물론 엄마가 워낙 깔끔하게 관리하신 탓도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1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그 옷은 여전히 컸다는 사실이다.

슬프게도 고모의 바람만큼 나는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고모는 왜 그렇게 큰 옷을 사셔야 했을까?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부모가 되고 보니 한창 크는 아이들에게 나이에 딱 맞는 옷을 사주기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2019. 12. 15. 처음으로 아이의 일상복을 샀다. 크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로운이의 옷도 접지 않으면 입을 수 없을 만큼 컸다. 

특히 유아기 아이들이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미처 몰랐다. 옛 표현을 빌리자면 아기들은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자라듯이 쑥 쑥 자랐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아이들 옷을 살 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매번 한 치수 혹은 두 치수 큰 옷을 사게 되었고, 누가 옷을 물려준다고 하면 늘 거절하지 않고 받게 되었다. 어떤 때는 새로 산 옷을 한번 입혀보지도 못하고 아이가 쑥 커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며칠 전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한 9월 가을의 초입에 봄과 여름내 묵혀 두었던 아이의 긴 옷을 꺼내서 입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정리했다. 분명 올겨울까지 잘 입었던 옷이 다시 꺼내어 입으니 팔과 다리가 한 마디는 부족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아이는 또 한 뼘 자란 것이다.

    

가끔 육아가 힘들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어딘가 마법의 뻥튀기 기계가 있다면 아이를 뻥하고 어른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도 막상 아이를 마주하고 있으면

아이의 그 해맑은 웃음과
아이 때만 들을 수 있는 그 깔깔거림
아기 때만 맡을 수 있는 꼬순내

그 모든 것들이 영영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언젠가 아이가 독립을 외치는 날이 오면
나는 미련 없이 아이에게
안녕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의 자람에 비례하여 나의 육체는 성장을 멈추고 퇴행기로 접어들 것이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정서적 정신적 성장만은 아이의 성장에 비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아이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날
그 어떤 날 
삶이 힘들 때 
내 아이에게 기댈 곳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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