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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by Ding 맬번니언

행복이와 저녁을 먹기 위해 동네 쇼핑센터로 향했다. 해 질 무렵, 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주황빛이 길게 번지고 있었다. 가게 앞 화분의 잎사귀들은 저녁 바람에 살짝 흔들렸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우러져 하루의 끝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반짝이는 흰색 로봇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하얀 몸체에 조명이 은은히 번졌고, 머리에 눈이 큰 동그라미처럼 화면에 떴다. 한때는 이런 풍경이 신기해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곤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옆을 지나친다. 기술의 새로움이 어느새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 게이로,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그런 ‘익숙한 풍경’이 되었을까. 처음 행복이를 팔에 앉고 호주에 도착한 의아한 시선과 질문들 속에 서 있던 내가 이제는 평범한 저녁 식탁의 한 장면이 되어 있다.


로봇이 음식 트레이를 들고 돌아서고, 행복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아빠, 로봇이 또 왔어!” 하고 웃는다. 나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이 평범한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새삼 느낀다.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는 것처럼, 이제 호주에서는 게이 커플이 아이를 키우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 아빠” 혹은 “두 엄마”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학교 행사에서도, 공원에서도, 그저 하나의 가족으로 바라본다. 한국에서 로봇이 서빙하는 만큼 호주에서는 흔하다.


나는 여전히 그 사실이 놀랍고, 동시에 감사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한국에서라면 여전히 숨겨야 할 현실 속에서, 이곳에서는 사랑이 그저 ‘다른 방식의 사랑’으로 존재할 뿐이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기술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사회는 마음의 벽을 허물어간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가족이라는 단어의 새로운 의미를 다시 배운다.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듯, 사랑도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나라에서 배운 ‘진짜 진보’다.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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