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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Aug 27. 2022

다꺼행_
22화. 로토루아 100배 즐기기

아픈 기억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긴장하고 잤는데, 다행이다. 아직까지 목은 좀 부은 느낌이지만, 몸은 한결 가벼웠다. 어제 온천 덕분인 건지...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뉴질랜드 전역을 통틀어 최대의 관광도시, 로토루아에서 유명하다는 간헐천과 마오리족의 문화를 한꺼번에 체험하기로 한 날이다. 바쁜 날이 될 것 같은데, 조금이나마 나아진 컨디션이니 고마운 시작이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먹기로 했다. 점심으로 
마오리족의 전통음식인 항이를 맛있게 먹게 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온통 유황냄새로 가득 찬 '유황의 도시', 뿌연 증기가 마을 이곳저곳에서 올라오는 신기하고 살아있는 곳, 로토루아를 파헤쳐 봐야지!! 

제일 처음 12시에 예약된 항의를 맛보러 갔다. 생재료를 땅의 열기와 온천물로 익혀먹는다는 마오리족의 전통 음식이 항의는 조금 싱거운 듯했지만, 건강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짠맛을 좋아하는 작은아이가 너무 잘 먹어주어 더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어서 눈과 입이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오리족 전통 음식인 항이 맛보기



그러고 나서 1시에 예정된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다. 마오리족으로 보이는 여자 가이드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마오리어도 알려주고. 재미나게 가이드를 해주어 1시간을 알차게 구경했다.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의 원천인 간헐천이 솟아오르는 모습도 운 좋게 볼 수 있었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드와 온천물도 신기했다. 아이들은 간간히 그 냄새가 참기 힘든지 코를 막기도 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땅바닥은 온통 따뜻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고 온천물의 열기만으로도 왠지 마사지받는 것처럼 기분 좋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나서 2시에 있는 마오리족의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에 자리를 잡았다. 입구에서 '안녕하세요!' 하니 '오~코리아! 소주!'라고 인사하던 한 덩치하시는 마오리족과 사진도 찍고, 작은 소극장 같은 분위기에 옹기종기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잠시 감상해보시길...)

마오리족이 라이브로 불러주는 아름다운 연가


굉장히 임팩트하고 강한 마오리 전통노래와 춤을 선보이더니, 한 곡 한 곡 할수록 더 부드럽고 잔잔하고, 흥겨운 음악과 춤도 참 정겹고 좋다. 

그러던 중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한창이던 대학 시절 MT 가서 바닷가에서 많이 부르던 '연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한국전쟁 때 파병된 NZ병사가 퍼뜨린 것이라고 한다. 마오라족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노래를 마오리족이 너무나 아름답게 직접 불러주니 애절한 사랑노래가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동영상을 찍어놓고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마오리 문화의 심장부, 로토루아에서 만났던 마오리족의 문화는 그들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새로운 문화체험이 나에겐 너무 큰 활력소가 되어준다. 이걸 위해서 나는 여행을 다니게 되는 것 같고, 아이들에게도 여행이 일상이 되는 삶이 살아주기를 바라게 되는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장을 볼까 하다가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냥 들어왔다. 로토루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홀리데이파크로~! 
도착해서 간단히 빨래를 하고 대충이나마 저녁 준비를 하느라 아이들 노는 모습도 제대로 못 보았는데, 하늘이 어둑하다. 아쉬워서 놀이터 잠깐 갔다가 진짜 깜깜해져 캠퍼벤으로 다시 돌아왔다.


요즘에 맨날 저녁식사 후면 패드로 
영화를 보고 놀았는데, 오늘은 어제 잠시 전쟁통에 한 약속을 지키려고 패드를 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색칠 공부하고 노네. ㅋㅋㅋ 그래도 내일은 보여줘야지~. 자기들도 그게 낙일 텐데...^^


내일 오전에 부지런 좀 떨려고 일찍 자기로 계획했는데도 눕고 보니 11시다. 휴~ 이제 캠퍼밴에서 반이 지나간다. 
남섬을 떠나 북섬에서의 또 다른 여행이 조금은 힘들다 느껴지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렇지만 오늘이 지나면 오히려 더 아쉬울게 뻔하다. 자는 시간 아깝다는 남편도 잠 못 이루고, 나도 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아까 씻으러 가며 잠깐 바라본 밤하늘에 와이토모 동굴 안에서 보았던 반딧불이만큼이나 반짝이던 별들이 사진에 담기지 않는 게 너무 아쉽다. 그동안 아이들 재운단 핑계로 밤하늘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이마저도 아까워진다. 이젠 매일매일 봐야지!





평소보다 빠른 시간, 아침 7시 반 기상. 오늘은 오랜만에 부지런 좀 떨기로 했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아그로돔에서 9시 반에 있는 양쇼와 팜투어를 하기 위해서... 간단히 아침 먹고, 양쇼를 보기 위해 들어갔다. 한국어 통역을 해주는 헤드셋을 끼고, 약 1시간 정도의 쇼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뉴질랜드에 있는 여러 종류의 양들을 재미나게 소개했다. 나는 그중 최고의 양털을 자랑하는 Merino가 젤로 멋지더라^^ 정말 멋지고, 귀여운 10여 마리의 양들이 소개되고 나서, 양털을 깎는 과정을 직접 보여줬다. 한쪽에서 작은 양 한 마리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양털을 모조리 깎아버리네. 그리고 양털도 직접 만지게 던져주었다. 난 기념으로 챙겨 와서 지퍼백에 담아두었다. 참 별것이 다 기념이다. 

아그로돔의 양쇼의 시작


그 후에는 소가 한 마리가 나왔다. 진행자가 소젖을 짜는 시범을 보이고 나서 3명의 지원자를 받았다. 아이들이 직접 해보면 좋으련만, 우리 애들 성격에 절대 나갈리는 없고,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싶어 과감히 손을 들었다! ㅋㅋ 그리고 당첨^^
아일랜드 여자, 중국 여자 그리고 한국 여자인 나. 이렇게 셋이서 소젖 짜는 체험을 하고 나서 자격증도 받았다. 난 너무 재미있었는데, 민망함은 남편의 몫이었나 보다. 

당찬 한국 아줌마는 말도 통하지 않지만, 손을 번쩍 들고 기회를 당당히 낚아챘다


그다음은 혼자서 3천 마리의 양도 몰 수 있다는 양몰이 개들이 나와서 쇼를 하기도 했다. 제법 알차기도 하고, 재미난 1시간 동안의 양쇼가 끝나고 바깥의 넓은 잔디에서 양몰이 개가 직접 양을 모는 모습도 보여줬다. 애도 어른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 넋을 놓고 바라본 듯하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중 수도 없이  본 것이 너른 초원에 뿔뿔이 흩어져 유유히 풀을 뜯는 양떼였지만, 양몰이 개가 직접 양을 모는 모습은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다음은 팜투어. 늘 이동 중에 멀리서 바라보던 양, 소, 알파카, 타조, 라마, 염소, 사슴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먹이도 줄 수 있는 체험이라 아이들도, 나도 너무 신이 났다. 역시 동물원이나 팜투어의 꽃은 피딩 타임이다. 저마다 갖가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느라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투어도 약 1시간 정도였는데, 거의 마무리 코스에서는 키위주스 시음과 마누카꿀 시식도 양껏 주니 입도 즐거웠다. 



뿔이 멋진 사슴에게 먹이를 주는 대담한 작은 아이                      vs                     알파카에게 먹이주는 소심한 큰아이



생각보다 알찬 양쇼와 기대만큼 재미났던 팜투어. 두 마리 토끼를 완벽히 다 잡은 후에, 너무나도 기분 좋았다.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만족할만한 즐거운 체험 덕분에 즐거운 한때를 보낸 듯하다. 


오전에 부지런을 떨었더니, 오후가 여유로워서 좋다. 로토루아 호수가 보이는 홀리데이파크에서 하루 종일 쉴 예정이라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잠시 들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아이들 점심 먹이고, 소시지랑 과일, 어제 쪄 놓은 옥수수에 맥주 한 잔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호숫가에서 오리들이랑 새들이랑 놀다가, 바윗돌 위를 이리저리 건너 다니다가, 자기들끼리 토닥거리다가, 아빠랑 놀다가... 노느라 정신이 없고. 애들이랑 놀아주고, 뒷정리 다 해준 남편 덕분에 난 로토루아 호수를 바라보며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일기도 쓰며 한가로운 휴식을 누렸다. 이보다 더 멋진 카페가 세상에 있을까?! 참 복도 많지. 이런 시간을 내가 언제 또 가져보겠나?! 오늘도 남편에게 참 많이 고마웠다...



로토루아 호수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이 자연을 언제 다시 보려나...


그러다 보니 어스름이 해가지고, 아이들이 배가 고프단다. 맘 같아선 오늘 사온 고기를 먹이고 싶은데, 어제 고기 먹어서 안 먹는다니 아쉬운 대로 그냥 밑반찬에 밥을 먹이고, 후식으로 뉴질랜드의 키위 먹으며 어제 못 본 영화를 본기로 했다. 사이좋게 보는 듯하다가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중간중간 다투기도 하지만, 볼수록 귀여운 내 강아지들이 여행을 즐기는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 영화 보는 동안 고기 구워 와인 한잔하며 내일 일정을 이야기했다. 하루 더 머물까, 아님 떠날까.?! 이런 대화는 계획 없는 여행의 좋은 점이기도 하고, 힘든 점이기도 했던 대화이기도 했다. 우리는 가장 좋을 때 떠나기로 결론짓고,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저녁식사를 계속했다.


일찍 일어난 아이들은 피곤했는지, 작은 아이는 영화를 보다가 잠들어버리고 큰아이는 영화가 다 보더니 졸립다고 했다. 양치시키고, 신속하게 잠자리 펴고, 오늘은 제법 수월하게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 이 또한 좋구나^^


양쪽 집에 오랜만에 전화도 드리고, 밤하늘의 별도 보았고, 알차고 바쁜 하루에 피곤할 만도 한데, 오늘 하루 너무 잘 먹어서 그런지 배가 땡글땡글하고 너무 배가 불러 잠도 잘 안 오는 듯하다. 그리고 바깥공기는 너무 좋다. 살짝 풍기는 소똥 냄새도 나에게 언제나 정겹다. 하루 이틀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렸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래도 참 다행이다. 오늘 하루나마 만날 수 있었던 이곳에서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참 선물같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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