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의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뭉치와 나는 마을을 나와 다시 공원의 호숫가로 향했다.
호수에 비친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물결이 되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속에 우리의 모습도 비쳐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호수에는 오리와 플라밍고도 한 무리가 유유자적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미나야, 여기 멋지지?”
“응, 이런 곳이 있어서 너무 놀랐어. 게다가 설마 네가 여기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무지개 마을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왠지 조금 두려워졌다.
내 옆에 있는 게 정말 뭉치인지 자꾸 확인하고 싶어져 보고 또 쳐다보았다.
햇살에 비친 뭉치의 복슬복슬한 털이 솜사탕 같아 보였다.
우리는 호숫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뭉치의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손을 놓고 싶지 않아 틈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뭉치 곁에 바싹 다가앉았다.
“뭉치야, 너 이 노래 참 좋아했지? 이 노래만 나오면 계속 내 주위를 깡충거리면서 춤을 췄었잖아?”
나는 휴대전화에 이어져 있는 이어폰 한쪽을 뭉치의 귀에 꽂아 주고 다른 한쪽은 내 귀에 꽂았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경쾌한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뭉치도 나도 고개를 까딱이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로 할아버지의 모습이 된 뭉치는 여전히 내 눈에는 귀여운 뭉치였다. 음악을 들으며 박자를 맞추던 뭉치는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웃었다. 살랑이는 실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는 오후,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었다.
“뭉치야. 네가 떠난 후에 정말 쓸쓸해.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이 강이 될지도 몰라. 내 마음속은 온통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었어. 너에게 하루 일을 얘기하는 게 얼마나 즐거웠는데…….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아마 네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을 꺼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뭉치, 너에게는 다 털어놓았으니까, 말이야.
그럴 때마다 같이 기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네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웠는지 몰라. 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계속 함께 했으니까…….
뭉치가 내 곁에 없을 거라는 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거든.”
목구멍에 큰 돌덩이가 걸린 듯이 메어왔다. 또 바보같이 자꾸 눈물이 났다.
뭉치가 울보라고 놀릴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나보다 커버린 뭉치를 올려다보았다. 뭉치의 구슬 같은 눈이 마치 우주의 별처럼 맑고 깊게 반짝였다.
“미나야, 나는 네가 나에게 해준 얘기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
네가 태어났을 때 혜영 씨랑 민석 씨의 품에 안겨 집에 들어오던 모습, 너랑 뒷산에 올라 풍경을 내려다보며 불렀던 노래, 그때 불어오던 바람, 나무와 흙냄새, 그리고 내가 아팠을 때 옆에서 잠도 안 자고 간호해 준 것도 말이야.
가족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던 그 모든 시간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있단다.”
뭉치는 복슬복슬한 한쪽 팔로 나의 어깨를 따스하게 감쌌다. 정말 포근했다.
어디선가 살랑이는 실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뭉치와의 추억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눈앞으로 지나가는 듯했다.
어른들은 이런 걸 ‘주마등이 스친다’고 말했던 걸까?
“뭉치랑 공원을 산책하면서 계절이 변하는 걸 보는 것도, 같이 달리기 시합했던 것도 정말 많이, 많이 그리웠어. 뭉치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이렇게 물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뭉치는 슬픈 표정 감추려는 듯 잠시 눈을 꾹 감았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잔잔한 호수만 바라보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