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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Jun 07. 2024

D+14 일단 뛰어


D+14



‘선재 업고 튀어’는 모르겠고,

일단 뛰어!

스텝을 밟고 보는 거다.

덤블링도 트램펄린도 아닌 스텝.

가볍게 움직이는 스텝.

실제 경기할 때는 좀 더 빠를 스텝.

기본 동작인 원 투의 자세를 바로잡으며,

훅 동작까지 반복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작을 하나로 나누고

한 동작도 쪼개어 보고 해보면 하겠는데,

동작을 이으면 고장 난다.

로딩 중인 프로그램처럼. 무한 로딩.

눈물을 머금고 강제 종료하며 다시 연습.

처음부터 하나씩 쌓아 올리는 거다.

좀 되어라! 좀 버텨라!

하는 간절한 마음은 회사에서도 복싱장에서도 같다.

어디서든 결국은 기초다.

걷기 전에 뛸 수 없고

수를 모르면 셈할 수 없고

언어가 없으면 소통할 수 없는 거다.

복싱에서는 그게 스텝과 잽과 스트레이트다.

‘원’하면서 한 쪽 팔을 쭉 뻗고,

‘투’하면서 바깥쪽 다리를 회전하며

다른 쪽 팔을 쭉 뻗는다.

발은 회전한 11자 모양으로

간격이 어깨너비보다 더 넓어야 한다.

한 번 동작하며 나아간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하므로

크거나 높게 뛰지 않는 게 특징이다.

매번, 배운 동작을 연습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데,

계속 거울을 보다가 멋있는 분을 봤다.

몸의 움직임이, 동작을 구사할 때마다 움직이는

다리 근육이 내가 그리던 모습이었다.

가볍고 잽싸고 확실한.

나도 모르게 홀려서 연습하시는 걸

계속 바라봤던 것 같다.

보면서 흉내도 내보고 그랬다.

혹시 복싱을 얼마 동안 배웠냐고

다른 운동을 하시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연습만 했다.

그럴 때가 제일 힘든 것 같다.

비 오고 눈 오고 무더위 오는 것보다도

마음이 무너지고 일그러지는 날.

하던 대로 혹은 되는 만큼 하면 그만인 것을.

자꾸 스스로를 볼품 없는 사람 만들고. 비하하고.

복싱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배우이자 아마추어복싱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탈일반인 이시영씨가 환하게 웃는 광고를 지난다.

단백질 쉐이크를 마시다가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나의 롤모델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있군. 좋군.

그런 생각까지 나아간 후에 다시 갈 길을 갔다.

연속으로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내일은 근육통이 좀 있을 것이다. 즐겨야지.

탈일반인이 아니어도

복싱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도 뭐 어때.

충분히 멋져. 멋진 나!

기왕이면 복싱인으로 거듭나라!

거듭날 때까지 힘내라!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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