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조각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간다.
햇살에서 가을 타는 내가 난다.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걷기 딱 좋은 날씨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아직 땀이 주룩주룩 흐르지만.
생지를 입고
손을 자꾸 바지에 문댔더니
손톱이 파랗다.
파란 걸 보니
어릴 적 먹던 파란 사탕이 생각나고,
소다맛 아이스크림도 생각난다.
하나 먹을까.
한 달이 끝나가는 시점에선,
공과금도 다 냈고
굵직한 고정 비용도 다 지나간 때에서는
꼭 이렇게 군것질 생각을 한다.
이런 것도 보상 심리일까.
다시 다가올 달을 계획하며
당이 떨어져서 그런 것도 같고.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들을 생각한다.
계절, 연도, 책의 쪽수, 디데이, 나이, ….
흐트러지지 않는 방향을 생각하면,
무너지는 마음의 틈에
조그만 돌 하나를
지지대로 넣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자꾸 찾게 된다.
핸드폰 배터리처럼 사라졌다가 채워지는 것 말고.
그렇게 왔다 갔다 변동이 있어서
언제 뭐로 있어도 자연스러운 것 말고.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리고,
나뭇잎은 색이 변한 뒤에 떨어지고,
메마른 나뭇가지에서는 새 잎이 돋고,
생산에는 유통 기한이 있고,
끝 다음에는 시작이,
시작 다음에는 끝이 있다.
잃어버린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걷기 좋은 밤에는
시작점도 도착점도 두지 않고서
그냥 내내 걷고 싶다.
걸을 수 있는 동안 내내.
하루가 거의 다 지나갔고,
내일은 출근하는 날이다.
숨을 고른다.
고르게 숨을 쉴 수만 있어도
뭐든 할 수 있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