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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조각. 옛날 꽃다발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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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조각



퇴근길에 꽃집에 들렀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왜나하면 완성된 꽃다발 느낌이

1990년대 유치원 재롱잔치비디오 같다.

놀림받게 생겼다. 이런 걸 돈 주고 샀냐고.

세상에 꽃집이 널렸고,

집 근처 꽃집만 해도 이보단 훨씬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멋질 텐데.

오늘의 나는 대체 뭘 잘못 먹을 걸까?

정말이지 뱉어내고 싶다.

그럴 때가 있다.

쓸데 없는 모험을 하는 날.

그런 날의 결말은 늘 같다.

큰 지출 큰 교훈.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서

고민하다 산 꽃다발인데,

받는 사람에게 가기도 전에

내 기분이 슬퍼졌다.

꽃집에서 꽃다발을 기다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꽃은 언제나 위로를 준다고.

선물이란 자연히 받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설렘,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함께한다고.

꽃이란 선물은

생화든 조화든 크든 작든 한 송이든 다발이든

그런 물질적 형태와 상관 없이

기쁜 일에서는 배가 되고

슬픈 일에서는 반이 되는,

기분 좋은 선물이라고.

받으면 좋은 선물, 꽃.

하지만 바닥에 꽂혀진 기분을 느끼며

정말 꽃이란 선물은 그런가,

촌스럽고 옛스러운 분위기여도

받을 때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자문하지만,

지금은 받는 이가 아닌 주는 이라 그런지

쉽게 답을 못하겠다.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꽃을 사지 않았다면 이미 도착했을 시간.

하지만, 마음을 말로만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오늘 같은 날이 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오해 없이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어서

급하게 꽃다발을 사는 그런 날이.

비록 마음에 쏙 드는 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변하는 건 아니므로

얼른 도착해서 전달하고 싶다.

유명한 가게에서 산 품 안의 케이크도.

‘널 위해서’로 시작하는 다정한 말들도.


by 개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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