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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조각
나는 포기한다.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건
스무 살의 나와 한 약속이다.
눈물이 마스크를 흘러 넘치고
통장에 돈이 없고
나날이 새롭게 병명이 늘어도
나는 그 약속을 지켜왔다.
포기할 기운이 있거든 끝을 보자고.
끝을 찍고 새로 시작하자고 다짐했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는 순간은 많았다.
무엇을 위해서, 뭐가 되자고.
어째서 이 악물고서라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날이면,
바람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볼품 없는 빈 껍데기.
수차례 밟혀 원래의 행색을 파악할 수도 없는.
거울을 보기 힘들고 씻을 수도 없을 때면,
그런 상태야말로 나를 놓았으니
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해서 가끔은 편법으로 계획을 파기하기도 했다.
내게 포기의 데이터와 절망의 감정보단
완수의 데이터와 감정이 더 필요했다.
해내기도 하고 잃은 듯 얻기도 하고
때론 파기까지 한다 해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 있는 곳이 출발선인지 중간 지점인지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곳인지
간절히 알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런 건 오늘의 영역이 아니다.
어디로든 가거나 멈추는 것뿐.
숱하게 멈추긴 했으나
오늘도 무사히 해냈다.
포기하지 않았다.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