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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조각
고수가 되고 싶다.
고수를 많이 먹으면 고수된 기분이 들까.
고수(高手) 말고 고수 향만 나겠지만.
스스로가 견딜 수 없게 바보 같아서
쥐구멍을 찾고 싶어지면,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해본다.
고수란 무엇인가.
흔들림 없는 표정과 몸짓.
고난과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함.
숨기는 것도 알아채는 통찰력.
‘고수’에서 떠오르는 것은
어쩐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는 능력.
사실 그런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닌데.
그저 적당히 알고 해내며
살아가고 싶은 것뿐인데.
‘적당히’가 세상 제일 어렵다.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지.
오늘도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은 나를
으스러지도록 품에 가득 안고 다독여본다.
주말에 등산을 갔다가
눈송이 열린 소나무 산을 보았다.
엄마는 길을 멈추고 잠시 풍경을 바라보셨다.
저 풍경은 소나무여서 볼 수 있는 모습이야.
다른 나무에서는 저 모습을 볼 수 없단다.
누군가에게 나는 ‘소나무’나
‘눈송이 열린 소나무 산’처럼
부르는 이름이 있고
다른 데에선 알 수 없는 진가를
펼치거나 알아주기도 할 테지만,
부르는 이름 없이 그냥 나무일 수도 있고
아무도 내가 무엇인지
왜 이런 모습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조차 없을 수 있을 테지.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는 것.
스스로 계속 이름을 부르며
상기시켜 주는 것.
어두우면 불을 켜주고
너무 밝으면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
한 가지의 형태에 목매지 않는 것.
by 개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