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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사 Apr 09. 2024

20화. 누구신데 저한테


누구세요? 말을 하지 않아도 눈이 그렇게 말한다. 전데요. 자식인데요. 저 모르시나요. 밖에서 만나는 그는 언제나 우리를 못 알아본다. 나뿐이 아니라 걔도 쟤도 전부. 희한한 일이다. 어째서? 집에서는 그렇게 소중한 자식이라고 어여쁘고 멋지고 세상 제일이라고 하면서, 문밖만 나가면 남이 되는가. 오늘은 알아보려나 싶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며 가까이 지나가 보고 스쳐봐도 그저 지나가는 사람, 심지어 ‘불쾌하게’ 스쳐 간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셋 중 나는 양반이다. 유난히 차별받는 이는 따로 있으니. 바로 위 형제인 걔는 밖에서 만난 그가 반가워 인사를 건넬 때마다 그런 눈빛을 받는단다. 뭔 미친 사람이 나한테 말을 걸지? 누구신데, 저한테 말을 거세요? 불쾌합니다.


나이 듦은 우리 사이에 떠오르는 핫한 화두다. 늙지 마. 그건 우리의 안부 인사. 늙는 건 불법이야. 그건 서로를 향한 절절한 애정. 늙으면 안 된다고 주문처럼 외우지만 속수무책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가 나이 드는 게 더 싫고 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나이를 먹는 게 더 싫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젊고 건강하고 팔팔해서 걱정할 것 없던 시절을 뒤로하며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일은, 생각처럼 받아들이기 어렵고 순탄하지도 않다. 대학병원까지 가지 않고 한의원과 정형외과와 내과와 부인과를 순회 도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그렇다. 그래도 매번 밖에서 우리를 못 알아보며 불쾌해하는 걸 그냥 넘기기엔 놀리기 딱인지라, 우리는 놓치지 않고 매번 놀린다. 펠리컨처럼 크게 웃는 것도 필수다. 하하하. 또 못 알아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럴 때 그는 당당하게 외친다. 못 봤어. 정말이야. 또는 귀여운 변명을. 글쎄, 왜 밖에만 나가면 못 알아보는지. 가끔 그는 다 커버린 우리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한 사람을 밖에서 못 알아볼 만큼 키워낸 그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대화의 끝에서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외친다. 왜 늙어, 늙지 마~! 그가 밖에서 매번 우리를 못 알아봐도, 우리도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도, 그가 이전 같지 않더라도,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계절이다. 놀기도 놀리기도 소중한 하루와 다가온 봄을 누리기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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