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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았는데 꼭 울었던 것 같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by 정물루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Think of Others)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비둘기에게 줄 먹이를 잊지 마라.)


전쟁을 시작하려 할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집으로 돌아갈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집이 없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물을 마실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너의 하늘을 바라볼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구름 아래에서 자유를 잃은 사람들을 잊지 마라.)


시를 쓸 때조차도,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멀리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너 자신을 생각하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

“어둠 속에서, 나라도 촛불이 되리.”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평범한 일상도, 누군가에겐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는 밥을 짓고, 물을 마시고, 하늘을 바라보는 가장 일상적인 일조차 특권이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국민 시인이자, 디아스포라의 목소리인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는 정치적 분노를 외치는 대신, 살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싶은 고요한 감정을 통해 더 깊은 윤리적 정치성을 전했다. 그는 추방과 점령, 억압이라는 거칠고 냉혹한 단어들을 직접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은유와 반복을 통해

언어를 감정과 기억의 매개체로 바꾸며 마음에 각인되는, 아름다운 시를 써내려갔다.


다르위시는 역사를 기록했지만, 감각을 남기는 방식으로 기억을 새겼다. 폭격 소리, 커피 내리는 냄새, 젖은 담배꽁초 같은 오감의 조각들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잊혀가는 모습에 저항했다. 가지 말라고, 그대로 머무르라고.



1941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마흐무드 다르위시는 1948년 알나크바(Nakba) 당시 가족과 함께 레바논으로 피난했고, 이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이스라엘 내부에 머물렀다. 끊임없는 감시와 검열, 구금 속에서 살아남았다.


1988년,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문을 시적인 언어로 써 내려간 시인이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종속되길 거부하며, 시인으로서의 독립성과 각 개인이 지닌 내면의 고통에 집중했다. 그의 시는 아랍 세계를 넘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시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했다. 그의 시집 제목들만 봐도 가슴이 울컥해진다.


Unfortunately, It Was Paradise

The Butterfly’s Burden

Why Did You Leave the Horse Alone?

Memory for Forgetfulness

In the Presence of Absence



우리가 쓰는 한국어가 떠올랐다. 대통령 탄핵과 선거를 지나며, 그 말들 속에서 나는 폭력에 가까운 언어를 너무 많이 들었다. 말의 윤리, 언어의 품격,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 그 사회의 성숙함을 드러낸다.


한국어는 본래 따뜻한 언어다. 존칭어 하나, 말끝의 높낮이 하나에도 조심스레 상대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언어는 결국, 말하는 사람의 마음과 철학을 드러낸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왜 이렇게 말로 서로를 아프게 하고 있을까.


다르위시는,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말의 품격을 지켰고, 추방과 상실 속에서도 언어를 사랑의 방식으로 남겼다.


“우리는 삶을 사랑한다. 언제나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We love life whenever we can.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해보면 어떨까.

사랑하듯,

시를 쓰듯.


"나는 부서진 것들 속에서, 아직 남아 있는 빛과 시의 숨결을 찾는다." - 마흐무드 다르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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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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