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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슬리만 만수르(Sliman Mansour)

by 정물루

어제는 미국의 '아버지의 날' - Father’s Day였다. 한국에는 없는 날이지만, 한국에 계신 우리 아빠,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아빠인 남편에 대한 생각이 길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야, 나는 아빠의 삶을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다. 20년 동안은 아빠의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빠는 새벽에 출근하셔서 밤늦게야 퇴근하셨고, 출장이 잦았지만, 주말에는 또 열심히 나를 자전거 태워주시고 하이킹도 데려가셨다. 계곡에 놀러 가서는 물고기도 잡아주시곤 했다.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피곤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주말마다 열심히 놀아주시고, 찡그린 얼굴 한 번 안 보이실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우리 아빠는 부처인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20대가 되어서,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후였다.


해가 지날수록, 아빠의 인생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었을 텐데, 어쩜 그렇게 아버지 역할을 잘 해내셨을까. 존경스럽다. 그래서 아빠를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짠하다.



Father’s Day와 관련한 콘텐츠가 어제 하루 종일 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웠다. 나처럼 자기 아버지를 떠올리거나, 아이들의 아빠인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포스팅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였다.


그 가운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아버지들 사진들도 보였다. 심하게 다친 아이를 안고 뛰는 아빠, 폭격으로 숨진 아이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아빠, 팔다리가 잘린 아이를 병원에서 간호하는 아빠, 인도적 지원 물자를 받아 달려가는 아빠, 미사일 소리에 겁에 질린 아이들을 안심시키는 아빠들... 재난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일들을, 오늘도 겪고 있는 아빠들의 모습이었다.



슬리만 만수르는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나라를 세우기 1년 전 태어나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겪어온 예술가다. 그는 현재도 팔레스타인의 서안지구(West Bank)에 살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억압에 대한 사회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의 검열을 피해,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담은 그림들로 유명하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작업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감이나 의무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전에 쌓였던 분노와 슬픔, 아픔이 조금은 가라앉는다고. 결국 자신도 인간이고, 그저 인간으로 살고 싶지만, 최소한의 자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의 마음이 담긴 것뿐이라 했다.


pasted-image.png 슬리만 만수르의 <마지막 만찬(The last supper)>, 캔버스에 오일, 1994


슬리만 만수르는 애국자라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한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그의 작품 <마지막 만찬>을 보며, 나는 우리 아빠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떠올랐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족과 나누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과 헌신이 느껴졌다.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가족과 나라, 세상을 향한 연대로 함께 고민하고 서로 응원해 주는 듯해 보인다.


사랑을 위해 시작된 종교가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지금, 매일 마음이 무겁다.

어제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 테헤란에 살던 주니어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아미랄리 아미니(Amirali Amini)라는 아이가 숨졌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지 못한 마음.

평화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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