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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삶원색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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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야 Jul 24. 2022

팅커벨의 인스타그램

나의 가장 원색적인 순간을 담다  





나는 종종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딱히 온 연락이나 알람이 없음에도 수시로 SNS를 들어가 본다.



타인의 소식이나 사진을 찾아보고 감상하기도 한다. 혹은 오늘 내가 느낀 다양한 감정과 이미지를 지인과 공유하기 위해 업로드한다.


위 언급한 내용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늘 일어나는 일일지 모른다.

소소한 재미가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할 때가 있으니까


디지털 디톡스



그러나 이것이 과할 경우 중독이 된다.

사실 SNS 중독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은 이슈였다. 매번 이런 이슈는 일부 사용자나 사회단체가 SNS 제공 업체를 규탄하고 항의하는 형태로 제기되고 있다고 했다.


오늘도 무료한 일상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 인스타그램 측에서 스스로 중독 예방 기능을 선보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정 시간 이상 인스타그램 앱에 체류하면 휴식을 권하는 알림이 뜨는 간단한 기능이었다.  


기능이 추가되면 타임라인 중간에 휴식 타이머 설정을 권유하는 창이 뜬다고 했다. 나는 SNS를 보는 행위 자체도 휴식일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모호했다.


휴식 타이머를 설정하면 인스타그램을 실행한 뒤 해당 시간이 지났을 때 휴식을 취하라고 알려준다.

누워서 숨을 고르거나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는 등 인스타그램에서 잠시 손을 떼고 할 수 있는 작업들을 알려준다고 한다.


그냥 애플 iOS의 ‘스크린 타임’처럼 과도하게 몰입하는 걸 막는 역할 정도인 것 같았다.

유감스럽지만 활발한 SNS 유저로서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굳이 나쁜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인의 좋은 소식들을 공유할 수 있으며 궁금했던 예쁜 장소 사진 후기를 손쉽게 확인할 수도 있었다.



내 안에 너 있더라




물론 이를 악용하거나 잘못된 사례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 때 나도 나의 SNS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경험이 있었다.


처음 나는 공유 네트워크 자체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쉽게 만들어진 어떤 것은 결국 누군가에겐 가시이자 상처가 될 수 있었으며 가해자도 불분명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 보니 저마다 인스타그램 계정 하나씩은 있어야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였고 나도 어찌하다 만들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사진을 올리고 공유함으로써 나를 봐주는 누군가가 생기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희열을 느낀 경험이 있었다.


이는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욕심이었던 걸까 나를 숨기려는 과시였던 걸까


나의 활발해진 계정은 곧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그 이미지가 만든 틀에서 난 맞춰 살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사소하게라도 고정된 스타일, 제스처, 언어 등의 컨셉 말이다.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서 팅커벨이었다.


동화에서 팅커벨은 피터팬 이야기 속 등장하며 옆에  반짝이는 인물로 모두 알 것이다. 팅커벨은 피터팬의 관심을 받기 위해 말썽을 부리거나 못된 짓을 했다.


실제로 심리학 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지만 팅커벨 증후군이라는 용어 또한 존재할 정도였다.


의지가 약하고 주변의 어른 혹은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위해 과도한 행동을 하는 증상을 주로 말한다. 내가 생각한 팅커벨은 자신의 가장 큰 외로움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지만, 알아주길 누구보다 원해서 반짝이는 그런 존재였다. 


이러한 증상의 원인으로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흔한 애정결핍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매우 수다스럽고 활동적이며 부모님 혹은 친구들에게 어리광을 많이 부리거나 칭얼거리는 증상 또한 있다고 했다.


온전한 사랑과 관심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나는 친구에 대한 결핍이 컸다. 지인과 친구를 다르게 구분 지을 정도로 명백했다. 그래서 사랑보단 우정이 월등히 중요했고 그만큼 집착했다. 나만 참고 넘어가면 괜찮겠지 하는 순간 또한 많았다. 그래서 늘 불안했고 바라는 것이 컸다.


이는 오히려 나를 잃어가는 잘못된 방법이었다. 한시적인 관계인만큼 가장 중요했던 건 나였다. 양식장 물고기보다 바닷속 물고기가 더 건강하고 자유로웠듯이 더 맛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더 멋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의사소통의 영향에 대해 언급했던 이전 글처럼

오늘은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언급을 담아본다.


내가 콩 한쪽을 나눠주면 고마워서 팥 한쪽이라도 나눠주려는 사람을 아끼기 시작했다. 나의 기쁜 일에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나의 슬픈 일에 같이 울어주는 사람을 찾았다. 꾸준히 나의 소식을 물어봐주며 나의 상태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내게 왔다.


좋은 것은 좋다고 존중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인정하는 감정을 아는 사람들이 좋아졌다. 이는 일방적인 배려를 요구하는 무례한 것과 다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맙다는 말에 인색한 사람이 많았다. 이것부터가 작은 시작일 것이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는 사람을 놓아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된 것뿐이다. 네가 놓은 손에 정말 많이 아파했던 만큼 더 이상의 관심에 메마른 사람이 되지 않기를 다짐했다.



우리 주변에 오늘 밤에도 반짝이는 팅커벨은 생각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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