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 Aug 24. 2022

굳이 결혼한 솔직한 이유

평범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럼 굳이 결혼할 이유가 없지 않아? 나의 결혼 생활을 들은 어떤 선배의 말이다. 그 사람 생각에는 돈도 거의 따로 관리하고 집도 따로 살고 아이도 낳지 않을 생각이면 그냥 연애랑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오... 맞다. 사실 나는 연애와 같은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혼을 했다. 모순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머리가 꽤 굵어지고 난 청소년 시절부터 20대 중반 연애 시절까지 나는 비혼 주의 지지자였다. 왜 지지자라고 표현하냐면, 내가 결혼을 함으로써 비혼 주의자가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코미디언은 비혼 주의는 기혼으로 완성된다는 우스개 소리를 했는데(내가 정말 싫어하는 방식의 유부남 농담이다. 마치 본인이 큰 희생을 했던냥) 비혼 주의자는 비혼을 행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사회 현실에서 여성의 비혼 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여기서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내가 비혼 주의에 굉장한 관심과 지지를 가졌음에도 비혼 주의를 배반(!)하고 기혼자가 된 이유를 말해 볼까 한다.








사실 나는 지금도 결혼을 후회하고 있다.

 



남편과의 관계는 완벽히 안정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듣는 남편은 많이 섭섭해 하지만... 결혼을 한 이유가 결혼해도 결혼 전처럼 살 수 있기 때문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결혼을 무슨 도전처럼 생각했다. 나는 비혼을 지지하지만 남들이 다하는 결혼에 대한 부채감이 나도 모르게 남아있었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남들과는 다르게도 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어떤 환상에 빠진 나머지 갑자기 벼락처럼 '결혼할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은 현실과의 타협점을 찾은 것 아니었을까. 나의 신념이 그만큼 단단하지 않았을 뿐이었을까. 여하간 내가 굳이 굳이 나의 독립 유부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나의 타협점이 어떤 새로운 숨구멍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때의 나를 위함이다. 물론 삶의 방식이 너무나 잘 맞아서도 가 제일 첫 번째 이유다.


그래도 결혼을 해봤으니 비혼+연애에 비해 기혼+독립(무자녀)의 장점을 말하자면 역시 안정감의 차이를 들 수 있겠다. 나의 법적 보호자가 생겼다는 것은 생각보다 안심이 되는 일이다. 언제까지나 부모님 아래 있을 수는 없으니까 독립은 결국은 언제가 해야 할 진짜 필수 숙제였다(선택적 숙제인 결혼과는 다르게). 그러나 갑자기 병원 업무, 부동산/금융/보험 같은 일들을 처리하려고 보니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멘붕이었다. 물론 우리의 친구 구글이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그대로 인 것이다. 이럴 때는 같은 바보지만 남편이 조금은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긴 한다.


그리고 둘이 버니 확실히 도전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 주택 마련할 때도 그렇고. 그렇지만 혼자 살면 큰 주택이 필요 없지. 나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투자는 꼭 투기가 아니더라도 좀 꺼리는 편이라서.(절대 내가 부동산 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장점을 말했으니 단점도 있겠지. 당연히 결혼은 단 둘이 하는 게 아니었다. 따로 산다고 해서 며느리라는 나의 또 다른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남편도 사위라는 역할이 생겼지만, 다들 알다시피 며느리는 그 이름만 불려도 어쩐지 마음 불편한 입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시댁 어른들이 꽤 쿨하셔서 평소 안부 전화나 집 방문 같은 스트레스는 없지만 그래도 명절 같은 꿀 휴가에 고정 일정이 생긴다는 건 슬픈 일이다.


 다른 단점은 예상했지만 겪어보니  크리티컬 한데 바로 주변의 아이 타령이다! 결혼 7 차인 우리 부부는 또래에 비해 심지어 일찍 결혼한 편인데도 이제 친구/동기/동료들이 결혼해서 대부분 아이를 가졌다. 나는 아이 타령은 손위 어른들만 하는  알았는데 아이를 가진 주변 남자 동료들이 그렇게 나에게 아이 생각은 없냐면서 은근히 임신을 추천하는 것이다. 충격이었다. 미혼에게 들리는 결혼 타령만큼이나 무자녀 기혼에게 들리는 아이 타령도 심한데, 게다가 나는 따로 살기까지 하니 주변의 걱정 아닌 걱정이  자루에 담아도 넘칠 정도다. 아이를 만나고 느낀 환희와 행복에 돌아버린 아빠들의 오버에 나는 아주 지칠 노릇이다. 다만 신기한 것은 여자인 친구들은 아이 없는 나에게 '부럽다, 아이 낳지 마라, 힘들다, 아프다' 같은 현실적인 조언과 지지를 보내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여하간 독립 유부 생활이 가능한 것은 아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있다면 그건 그냥 독박 육아 주말부부밖에는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한 끗 차이로 모든 입장이 변하기도 한다.

이전 05화 집순이에게 최적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