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삿갓 Jan 01. 2025

생각

24년, 전국일주를 정리하다 든 생각

나의 세계는 진지하면서도 음흉하고 때론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유치해서 깜짝 놀라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선과 악은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예쁜 여성이 지나가면 눈은 그녀를 쫓는다. 그리곤 ‘와, 저런 여자랑 사귀면 어떨까?’라며 함께 있는 상상을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흐름인가 깨닫지만, 그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생각이 많은 나는 잠을 제때 못 잤다. 잘못하거나 할 말을 못 한 날이면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걷기’라는 처방약을 만났다. 약효는 끝내줬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밖으로 나가 걸었다. 생각 정리가 수월했다. 때론 걷기에 집중한 나머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많다는 점은 더 이상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부족함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으면서 이치를 깨달았다. 다양한 상상은 삶의 의지를 단단하게 했다. 나는 여전히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걷는다.


[눈]
눈이 오면 아무 생각 없이 소리 지르며 나가던 시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눈이 온다는 사실만으로 얼굴 가득 함박웃음 지으며 나가던 꼬맹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젠 눈이 오면 얼굴부터 찡그린다. 아무 생각 없던 꼬맹이는 생각 많은 어른이 되었다. 지하철이 지연되지는 않을지, 차는 안 밀릴지, 평소보다 일찍 나가야 할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지, 너무나도 많다. 그래도 눈이 오면 좋다.


어렴풋이 그려지는 어린 시절이 보이니까. 눈 온다며 엄마 손을 그렇게 잡아대는가 하면, 눈을 열심히 뭉쳐서 던지고, 귀여운 눈오리를 만든다. 눈사람은 손길이 더해져 진짜 사람이 되어 간다.
우산을 잠시 내려본다. 머리 위로 펑펑 내리는 눈. 흐릿한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린다. 시커먼 마음에도 아직 동심은 살아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눈을 맞으며 걸어 다녀야지.


[익숙]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기란 쉽지 않지만, 버리고 나면 알 수 있다. 당연했던 것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전국일주를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둘 내려놨다. 편안한 잠자리,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 편리한 대중교통. 버리고 나니 알게 되더라. 매일 당연하게 행한 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었다.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익숙해지면 무뎌지고 잊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억하고 확인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다가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 나처럼 강제적인 방법도 좋다.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당연한 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