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 책은 한국인의 문화적 부상, 즉 한류를 낳게 한, 오늘을 있게 한 우리의 정서적 강점과 단점, 성공 요소, 실패 요소를 분석하고, 우리가 어떤 긍정적 가치를 더 키워가야 할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지 방안을 짜는 작업이다.
대한민국 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고, 선택지도 다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호는 큰 관점에서 보면 건국 당시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해, 주변 국가의 정세를 잘 타면서 굴곡은 많았지만 나름 잘 헤쳐 왔다.
세월호는 대한민국호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음을 상징한다는 나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Covid-19 펜데믹이라는 전세계를 뒤흔든 상황 이후, 전대미문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곧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미국발 인플레이션 잡기로 인한 경제불안, 최근의 이사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까지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기울어진 배를 잘 보수하고, 다시금 방향을 잡아 세계 현대사의 ‘현재진행형의 라이징 스타(Rising Star)’, 막판 대역전의 명수답게 다가오는 거대 파도를 잘 타고, 더 큰 미래로 운항해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를 걸어본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명 한명 따져보아도, 그 국민들의 총합인 국가 단위로 따져보아도,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운명의 승부를 걸어온 대(大)도박사들이기에, 대한민국 국민의 그 대단한 근성과 깡, 불가사의하도록 뛰어난 적응력, 위기 대처력을 다시 한번 믿어본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조선의 선비들의 기개와 정신편을 쓰면서 줄곧 이미지로 떠오른 분이면서, 책 말미 어떻게든 꼭 언급하고 싶었던 분이 있다. 바로 필자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필자는 증조라는 말을 알지 못해 ‘진주할아버지’로 잘못 알아들어 ‘진짜 진주를 갖고 계셔서 진주 할아버지인 걸까’ 남몰래 궁금해했었다.
증조할아버지는 남녘 남, 구슬 옥자를 함자로 쓰시니 이름에 진주를 갖고 계시긴 했다. 증조부는 1898년 대한제국 고종황제 시절 태어나신 분으로, 어린 필자의 기억에 한참동안 상투를 틀고 계셨다. 햇볕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긴 머리를 참빗으로 잘 빗어 단장하고 단단하게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쓰시는 할아버지를 보는 것은 어린 나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네 기억이 틀렸다. 증조 할아버지 단발령 때 머리 자르셨다’고 하셨지만, 분명 난 할아버지가 상투를 트시던 모습을 기억한다. 내 기억 속의 증조 할아버지는 늘 우아하고 단정한 몸가짐과 옷매무새를 가진 분이셨다. 사실 증조부는 신분상으로 직분상으로 선비 계급은 아니셨다. 충청도 옥천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좀 보통보다 크게 짓는 근면한 부농이셨다. 말씀도 별로 없고, 본인에게나 남들에게나 엄격하셨고, 남동생은 늘 문지방에 앉지 말라 혼나던 기억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엄격하시기도 하셨다.
하지만 내게 증조부는 진정한 선비로 느껴진다. 그냥 농부라기엔 몸가짐과 행동거지가 어린 내 눈에도 너무나 우아하게 보였다.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몸에 밴 고상함과 우아함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조선시대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남겨준 유산, 정신적인 고아함- 고상하고 우아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책 속에서 조선시대에 대해 때론 부정적이고 때론 강조를 위해 과격한 표현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 대한 필자의 애정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무한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식민과 가난과 전쟁과 재건의 그 어려운 시대에도 선비의 고결과 삶을 대하는 자세, 우아함을 잃지 않으신,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조상이 바로 나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그 분들께 감사와 함께 감히 졸고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