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백과사전과 위인전

엄마가 큰맘 먹고 사준 선물은 사막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by Hyean de TJ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참 특별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일입니다.


그 선물이 평소 아주 갖고 싶었던 것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일 겁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받은

선물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아서였을까요.


선물을 받았던 그날이 제겐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낮에는 늘 혼자였던 집이었지만,

이제는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


참 행복한 요즘이다.


우렁찬 목소리로 "학교 다녀왔습니다!"를 외쳐본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학교를 다녀온 후에는 마루에 책가방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세게 열어본다.


밭에서 채소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했던 집이라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어야 했다.


그러기에 수돗물을 받아 보리를 한 주먹 넣어 끓인 물은 식구들을 위해 먹고 남은 델몬트 오렌지 주스병에 2병씩 담겨 있었다.


손아귀에 힘을 꽉 주어야 열리는 뚜껑을 힘겹게 열고유리컵에 물을 콸콸 부은 뒤 숨이 넘어갈 듯 물을 들이켰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연신 닦아도 목덜미와 머리카락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에 젖은 나는 누군가는 들으라는 듯 "하~ 이제 살 것 같다!" 혼잣말을 해본다.


한 숨 돌리고 나니 엄마가 계실 안방이 궁금해진다.

"음... 엄마가 집에 있나? 밭에 있나?"


문을 열어보니 웬 책들이 방에 한가득 있는 게 아닌가!


방을 가득 메운 것은 바로!

올 컬러 양장 백과사전과 위인전기 40권.


눈이 휘둥그레 해진 나는 한 손으로 들기도 힘든 백과사전을 한 권 집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는데,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말한다.


"준이 학교 갔다 왔어?"

"응! 이거 근데 댓끼리 재밌다."

"그래 큰 맘먹고 산 거니까 잘 읽어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찾아봐"

"어! 엄마 고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가 있는 집에 내가 읽을만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


책장에는 누가 봤을지 모르는 세로로 쓰인 옛날 책들만 즐비했고, 한자로 가득한 이름 모를 책들만 가득했던 책장에 드디어 어린아이가 읽을만한 책이 이제야 생기게 된 것이다.


늘 궁금한 게 많았던 어린 시절,

집안사람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어려웠는데 그 어린 시절의 백과사전과 위인전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이

책이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쇼하고 있네.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하겠지만,


진짜 나에겐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읽었던 위인전 중에 철강왕 카네기와 이순신 장군, 강감찬 장군, 헬렌 켈러는 읽고 또 읽었다.


그 당시 읽고 또 읽었던 위인전은 유년기 시절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우직하게 나아가는 성실함과 불굴의 의지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 신박한 기지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위인들의 위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훌륭한 멘토가 되었다.


엄마는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히 아셨다.

그래서 그 당시 엄청나게 비싼 책을 할부로 사준 것일 것이다.

물론 새책을 턱턱 사줄만한 형편은 아니었기에 그나마도 완전한 새책이 아니라 중고책이라 조금 싸게 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생각해도 어린 시절의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늘 궁금한 게 많아 뭘 하든 왜 이렇게 하는지?

왜 이걸 하는지? 등의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매일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호기심 많은 아이에게 필요한 건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이었다.


나는 지식의 백과사전과 위인전을 매일같이 읽었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가 큰맘 먹고 사준 선물은 사막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누구에게나 어릴 때 어떤 특정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있다.


나는 특히 사소한데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낯선 사람에게는 말도 못 붙이면서

집안사람들에게는 귀찮을 정도로 말을 많이 걸었다.


집안사람들은 낮에는 돈 벌러 나가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밥을 먹고서 각자의 방에서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시집을 안 간 고모가 둘이나 있었지만, 매일 저녁 피곤한 몸을 치대면서 귀찮게 물어보는 나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쏟을 리 없었다.


그렇게 큰 정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 나는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 되면, 고모들의 퇴근을 기다리며 대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80년대 분위기상 젊은 20대의 처녀들이 조카를 위해 대화를 하는 등의 시간을 쏟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냥 자기들이 먹고 싶은 간식이 생기면, 투게더 아이스크림이나 길거리 떡볶이나 튀김 같은 간식을 같이 먹는 정도였다.





To. 엄마


엄마! 엄마는 저의 그 많은 말들을 끝까지 들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 젊은 나이에 신혼도 즐기지 못하고, 자식도 키워본 적 없는데 저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엄마의 희생과 큰 사랑이 늘 바르게 살도록 이끌었어요.

그 덕분으로 지금의 제가 이렇게 잘 살고 있네요.

늘 부족한 아들이지만, 늘 고맙다는 엄마!

내가 더 고마워요!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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