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 만남 그리고 엄마

나는 엄마라고 부르는 그 아이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by Hyean de TJ

이 지구 상에서 생명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하늘이 맺어준 사이. 즉, 천륜이 맺어집니다.


그것이 좋든 싫든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새 생명의 축복이자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행복과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보통 자녀들은 그 부모가 남겨놓은 추억의 사진과 영상 그리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이야기를 애써 떠올려보려고 노력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무방비 상태일 때, 어린 새 생명을 살려주고 키워준 사람, 우리는 그 엄마의 헌신과 사랑을 기억해 보려 하지만, 왜 인지는 몰라도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냥 그런 느낌 내지는 그랬을 것 같다는 추측?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알려줘서 아~ 그때 그러셨구나.. 하면서 기억이 나지도 않는 때를 기억해보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게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나에게는 참 감사하게도 엄마와 만난 기억이 모두 있답니다.


앞으로 엄마와 나의 그 옛날이야기들을 세상에 들려드리려 합니다.






1988년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밭일과 시장에서 채소 파는 일을 오래 해 투박하기 그지없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른 손바닥만 한 큰 종이에 이름 석 자가 쓰인 명찰을 달고서 갓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던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나는 가뜩이나 사람 낯을 많이 가려 어디 가서 말도 잘 못 붙이는 성격인데 늘 밭일을 하는 할머니의 심부름은 점빵(구멍가게)에 가서 할아버지 마실 탁주랑 사이다 한 병 그리고 손주가 먹을 과자 한 봉지를 외상으로 가져오라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돈을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외상이라는 게 낯설고 뭔가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물건을 가져온다는 일이 죄를 짓는다는 느낌이 들어 정말 몸서리치게 싫은 게 외상으로 슈퍼에 갔다 오는 심부름이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으면 너무 무서우니까 낑낑대며 짐을 들고 어른들의 잔심부름을 했었던 옛날이야기네요.


동네에 아이들은 많았지만 나이가 제각각이라 또래 친구가 없었던 아이에게 동네 형들은 매일같이 동네 아이들끼리 싸움을 붙여댔고, 그게 싫었던 나는 할머니가 계신 밭에서 땅이나 후벼 파고, 개미와 메뚜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준아! 니도 저기 애들하고 놀아라!”

“할매, 나는 싫어!”

“와~ 저기 가서 놀믄 재밌을낀데..”

“나는 여기가 좋아!”

“그라믄 저기 노리터 점빵가서 할매가 난주 돈 준다카고 탁주 한비랑 사이다 사가온나!”

“싫다 할매! 그냥 지금 돈도!”

“괘안타! 할매가 난주 돈 준다캐라”



뙤약볕에 일하다 보니 힘도 들거니와 잠시 쉬는 중간에도 혹여 밭에서 손주가 쓰러질까 걱정이 되었던 할머니가 손주가 심심할까 보낸 심부름이었겠지만 몇 번을 타일러도 요지부동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갓 여덟 살이 된 아이가 집에 있어봐야 사람도 없고, 집에 혼자 놀만 한 장난감 하나도 변변치 않았으니 어린아이가 갈 곳은 땀 냄새 풀풀 나는 할머니 품이었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젊은 여자가 집으로 온 일이 생긴 겁니다.


꽃 내음이 진한 화장품 냄새가 방 안에 진동을 하고 처음 맡아보는 향기에 이끌려 방에 앉아 인사를 하라고 해서 마주 앉게 된 어느 보통날, 그렇게 우리 모자는 처음 세상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후줄근한 긴팔 남방에 꾀죄죄한 바지가 땀에 절여져 냄새가 풀풀 나는 줄도 모르고, 속으로는 그저 싱글벙글 헤벌쭉 거리는데 몸은 쭈뼛쭈뼛 손가락을 꼬깃거리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자리를 일어서려고 몸을 일으킨 처녀의 손을 아이가 갑작스레 덥석 잡은 겁니다.


그리고 내뱉은 말!


“엄마!…. 엄마가 돼주세요.”


흠칫 놀란 젊은 여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습니다.


물론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고, 맹랑한 아이의 돌발행동에 어여쁜 처녀는 아이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작은 손을 맞잡은 여인의 손은 참 따뜻했고, 손에서는 좋은 냄새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렇게 아찔한 첫 만남을 뒤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여인은 고민 끝에 돌싱이었던 남자의 아내이자전처가 낳은 자식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어쩌다 엄마와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때가 정말 젊은 이십 대 처녀 때인데 참 놀랍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하시네요.


나 역시도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렇게 숫기 없던 아이가 어떻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엄마와 나는 반드시 만날 운명이었고, 나는 엄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To. 엄마!

엄마! 그때 손 잡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이쁜 우리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

From.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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