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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Feb 09. 2024

그건 애플이 아니에요

Trust _ 메시지 _2. 차별화

[대리님 어디세요?]

태백은 홀로 을지로 밤거리를 걸으며 장 대리에게 카톡을 했다. 2차를 가자는 이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술이 더 들어가면 이성으로 붙들었던 어떤 감정이 툭 하고 튀어나올 것 같아서. 그날의 일을 모두 말해버릴 것 같아서. 본부장의 말처럼 이나를 아끼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일과 사랑 따위 인생에 몇 안 되는 결정적 순간에 불운의 전령으로 각인될까 두려웠다. 진실을 알아내고 어떤 선택을 하고 견디거나 투쟁하거나 그 모든 일들이 온전히 이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충무로야. 왜?]

[술 한잔 하실래요?]

[나도 친구들이랑 1차 끝내려는 중이야. 이리로 올래?]


"마~빼갈 냄새가 진동한다. 좋은 거 먹었나 보네?"

"좋은 사람과 마셨지요"

"그런데 왜 벌써 헤어졌어?"

"말실수 할까봐요."

"그럼 나한텐 말실수해도 되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홍합국물이 나오고 장대리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이모 소주 한 병 가져가요"

찰랑찰랑 맑은술이 채워지고 잔을 부딪힌 다음 목젖을 열고 원샷.

크~ 비싼 연태보다는 두꺼비가 체질인 모양이다. 알이 튼실한 홍합을 까서 입에 넣고 뽀얀 국물을 떠먹는다. 그 익숙한 맛에, 질감에, 훈훈한 공기에 마음이 탁 놓인다.


"죄송해요..."

"뭐가?"

"저 그거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면 되지 뭐 걱정이야."

장 대리는 그게 뭔지 안다는 듯 까만 껍데기에서 분리된 붉은 홍합을 집어먹으며 말을 이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니가 무슨 힘이 있냐? 까라면 까는 거지."

"대리님...위에서 뭘 하라고 하는지 알고 계신 거죠?"

마침 싱싱한 제철 해물 한 접시가 나왔다.

"먹어, 오독오독 전복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두꺼비 한 병이 더 추가됐다.


"잘 들어. 모태백. 나는 이제 MZ에 관심 없어. 작년까지의 MZ라면 어떤 굴욕도 감수하면서 붙어 있으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아냐. 마음에 안 들어. 하나부터 열까지...생동감. 살아 숨 쉬게 하라. MZian 을 살아 숨 쉬게 하라는 미션, 인간美라는 어찌 보면 촌스러운 데다 그게 뭐야? 싶은 회사의 핵심가치까지 마음으로 공감했고 일이건 관계건 그에 어긋나지 않게 일해왔다 자부해. 눈치 볼 것 없이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누구든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존중받고 호기롭게 내지른 도전에 대차게 실패도 해보고... 응? 알아? 마음을 다해 일했고 조금씩이지만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성취감도 컸지. 근데 지금은... 내가 알던 그 MZ가 아니야."

"그런 곳에 저는 남아 있으라고 하시는 건가요?"

"넌 달라. 성급해. 충분히 경험해 보고 내면으로부터 어떤 가치관이나 기준이 생길 때, 그때 결정할 수도 있는 문제야. 지금 내 이야기가 정답일 수도 없고 이제는 T그룹스럽게 된 MZ에서 너에게 딱 맞는 옷을 찾아낼지 누가 알아? 나는 겪어보지 못한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 복잡하고 숨 막혀 보이지만 그래도 체계는 있는 시스템, 그 안에서 배울 건 분명 있을 거야. 다만 지금의 나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동력, 엔진이 완전히 꺼져버린 느낌이거든. 여기서도 더 이상 날 필요로 하는 것 같지도 않고...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지 뭐."


장 대리는 달관과 허탈이 뒤섞인 듯한 묘한 눈빛을 하고 연신 술잔을 들었다. 태백은 말없이 잔을 부딪치고 함께 소주를 들이켰다.

"좋은 사람이랑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게 취하면 그게 행복 아니냐. 그래 안 그래? 모태백"

그날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태백의 기억에 없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이나 씨, 화려함, 밝음, 그 어떤 현란함에 가려서 미처 못 보고 있는 진실들이 있을 수 있어요.이나 씨는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조금만 멈춰서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면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이나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이나에게 카톡을 넣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1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답은 없었다.



"모태백, 차 한잔 하자."

'프로젝트 R'의 kick off 미팅이 끝난 후 동석했던 인사팀 동기 김이 태백을 불러 세웠다.

"장 대리님 괜찮냐?"

"이미 마음이 많이 떠나신 모양이야. R리스트에 포함되었다고 해도 덤덤하시더라구"

"당연한 거지. 자기가 자청한 건데..."

"뭐? 자청?"

"몰랐어? 사실 팀장이 이 프로젝트 진행 맡기려던 건 장 대리였어. 이런 말까지 하는 건 좀 뭐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까 감정 빼고 들어. 팀장은 애초에 너를 그 리스트에 포함시킬 계획이었어. 팀마다 한 명 의무라고 했으니... 당장 장 대리는 써먹어야겠고, 김 과장은 자신에게 충성스럽고 그러니 답은 누구겠어? 이제 1년 조금 넘은 신입. 모태백 아니겠어?"

태백의 입이 잘 익은 홍합처럼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도 전해 들은 건데. 너를 리스트에 넣을 거라고 하니까 장 대리가 리스트를 던져 버리면서 차라리 나를 넣으라! 고 했다는 거야. 팀장이 부들부들 떨면서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건데 제 발로 차버리네, 건방진 놈이네 하면서 욕을 바가지로 하고 난리도 아니었대."

"장 대리님 곧 결혼도 하실 텐데..."

"내 말이... 그렇다고 뭐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거 같던데...아님 집안이 금수저 집안인가?"

그깟 인간미 따위가 뭐란 말인가? 어디든 들어가지 못해 아우성인 마당에, 붙여만 주면 견마지로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절규로 가득한 세상에, 원 제 발로 나가겠다는 사람이라니. 하필 그 소동에 내 이름이 끼어있다니.


이제 T그룹 소속이 됐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무람한 체 안부인사를 가장한 전화부터 돌렸다. 엄마의 한 톤 높아진 데다 콧소리까지 섞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 글쎄 우리 태백이네 회사가 이번에 T그룹으로 합병이 됐다지 뭐야...그으럼 고용 승계 당연히 되는 거지...전에 회사도 나쁘진 않았는데, 그래도 이름만 턱~ 대면 다 아는 T그룹이라니까 정신이 번쩍 들지 뭐야...그으렇지~그렇지. 아이고 내가 좋을 게 뭐야...제 인생인데 무얼...그냥 걱정을 조금 던 것뿐이지 뭐..."


하하호호


별안간 손에 넣은 T로고가 박힌 명함값에 은근히 부풀었던 태백은 장 대리로 인해 무참해졌다.




핵심 가치는 온리 원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버리지 못하는 0순위다.


디즈니 랜드/월드의 4대 가치는 안전, 고객만족, 외관, 효율성이다. 이중 핵심은 안전이다. 그 어떤 가치도 안전에 앞설 수 없다. 디즈니 캐스트(놀이공원 운영직원들을 이렇게 부른다)들은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자체적으로 놀이시설을 멈춰 세울 수 있다. 윗선에 보고해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손 놓고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안전에 관한 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는 지침을 입사와 동시에 철저히 훈련받는다.


미키 마우스, 마블 히어로 등 수많은 캐릭터, 환상적인 디즈니성과 시설물, 짜릿한 놀이기구 등 디즈니 랜드/월드를 상징하는 가치들은 많지만 내부 구성원들이 0순위로 지켜내는 가치야말로 안전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안전'에 대해 의식할 필요조차 없다. 안전은 디폴트값으로 즐겁고 행복한 경험만 가져가만 된다. 디즈니의 변함없는 명성은 핵심 가치에 대한 모든 구성원들의 무한 헌신에서 나온다.


스티브 잡스의 오랜 파트너였던 켄 시걸은 자신의 저서 [미친듯이 심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기업은 변치 않는 가치관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을 믿는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회사에 꼭 어울리는 단 하나의 문구를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단 하나의 문구가 그 유명한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rent' 다. 다름 아닌 켄 시걸의 손에 의해 발견되었다. 애초에 애플이라는 회사, 스티브 잡스의 기저에 있던 가치였다.


스티브 잡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나 제안이 오면 그 즉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건 애플이 아니에요"


Less is more. 환생한 미켈란젤로를 보는 듯하다.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는 이미 돌 안에 존재할 뿐,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낸 것에 불과하다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철저히 사용자, 고객 관점에서 최소한의 본질만 남겨 놓은 그들의 상품과 서비스와 물리적 공간과 UX를 향한 감정의 최초는 낯설음이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보지 못한 단순함의 극치, 그것이 곧 사용성과 편의성의 극치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제 없다.


hospiality 산업의 대명사격인 특 1급 호텔에서 조직문화 책임자로 14년간 일했다. 대기업 오너 소유의 호텔인 만큼 전형적인 호텔 브랜드와는 거리가 있었다. 800여 개의 객실을 포함한 다양한 레스토랑이 있었고 현장 근무자들은 기능적으로는 프로페셔널에 가까웠다. 친절함을 기본으로 장착한 서비스의 달인들이었다. 수십 년에 걸쳐 전해지는 헤리티지 또한 무시하지 못했다. 자신들만의 노하우 역시 단단한 듯 보였다.


대기업의 룰을 따르는 back office(사무직) 외국계 프랜차이즈 룰을 따르는 현장이 상당기간 공존했다. 말이 좋아 공존이지 기업의 철학도 정체성도 짬뽕이나 다름없었다. 단 하나의 핵심가치가 작동할리 없었다. '고객감동'이라는 엄연한 핵심가치를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 순간 매출이 그 앞을 막아섰다.


연말 평가시즌이 되면 고객을 얼마나 감동시켰는가? 만족시켰는가?라는 지표는 온데간데없고(있더라도 형식적이고) 온통 매출이 얼마인가? 공헌 이익이 얼마인가? 인건비를 얼마나 줄였는가? 따위 숫자 지표로 현장 리더들을 평가했다.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어 현장은 오직 '매출'만이 정답임을 은연중에 알아차렸다.


현장에서 즉각적인 의사결정으로 해결 가능한 고객의 작은 불만이 총지배인이 나서야 할 분쟁으로 커지는 일이 잦았다. 핵심가치의 부재 혹은 혼란에서 비롯되는 촌극. 고객의 만족, 감동이 가장 중요하다면 현장에서 일하는 가장 말단까지 고객 중심이 무엇이고 감동은 어떻게 해야 생기고 불만이 생겼을 때 어느 선까지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지 명확해야 한다. 그것을 철저히 교육하고 훈련시켜 동으로 이어질 때 핵심가치는 비로소 올바르게 작동한다.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 최우선, 최고 가치는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 두 개의 가치가 부닥칠 때 우선순위가 무엇이냐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게 핵심가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고객감동과 매출을 함께 추구하라는 식은 비겁하다. 대체로 두 개의 가치는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 고객감동 후 매출진작처럼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있어도 두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다. 양립할 수 없는 가치를 내세우는 순간 MOT(moment of Truth) 현장은 혼돈에 빠진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identity 존재의 이유를 깎아먹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대개 자신의 자리에 대한 불안이 이런 무리수를 부른다. 당장 이 자리를 연명해 나갈 수 있을지 불안해질 때 매출, 숫자에 집착한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렇게 말했다

"경영의 엔진이 경영자의 사리사욕, 공명심, 권력욕에만 머물러 있다면 설령 잠깐 성공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발전은 도모할 수 없다"


'크레도'는 단 하나의 핵심가치다. 택의 기로에서 모두에게 이로운 판단과 행동으로 이끄는 이정표다. 디즈니의 신입 캐스트가 타 고객의 불편을 야기하고 컴플레인이 쏟아질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놀이기구를 멈춰 세우게 하는 용기의 원동력이 된다.


디즈니를 지금의 반열에 올려놓은 CEO 밥 아이거는 자신의 저서 [디즈니만이 하는 것]에서

"기업의 조직문화는 많은 요소들에 의해 그 형태를 갖춘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리더가 ‘우선사항’을 반복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리더가 우선사항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은 일할 때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과 에너지, 자본이 낭비되고 마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고객감동', '인간중심', '희망찬 미래', '안전제일' 따위 가치들이 숫자와 부닥칠 때 내부 구성원들은 정작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딱 하나만을 남겨라

결정적 순간,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판단의 근거로 활용하는 그것. Only one의 가치. 없다면 만들고 복수라면 한 가지로 줄여라. 동시에 양립하는 가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고객만족 이후 매출이 순차적으로 따라올 수는 있어도 두 가치가 동시에 충족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윤은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핵심가치를 이행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수적' 가치라는 진리를 이제는 받아들일 때도 됐다. 핵심가치 앞에 은근슬쩍 이윤을 내세우는 관성을 경계하라.  정말 매출, 이윤이 먼저면 당당하게 그것을 전면에 내세워라. 신뢰는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생긴다.   


핵심가치 실천사례를 구체적 행동으로 이행하고 구체적 증거를 만들어 축적하라. 무엇보다 핵심가치 실천에 앞장선 구성원들을 선별해 치켜세우고 하이라이팅 하라. 평가하고 포상하고 승진시켜라. 그 과정에서 핵심가치는 자연스레 내제화 된다. 따로 교육도 필요없다. 일관성, 지속성이 생명이다.


팀별 조직별, 가장 인상적인 사례를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 내부 구성원은 물론 고객 대상으로 전파하라. 음지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려면 밝고 따뜻한 단 하나의 강렬한 햇볕이 필요하다.


입사시점부터 퇴직할 때까지 조직 내 모든 사람들에 틈만 나면 반복하고 강조하라.


한번 정해진 핵심가치는 건드리지 말라

기업이라면 저마다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 등이 있다. 대기업의 경우 그룹차원의 그것이 있고 계열사별로 자신들만의 언어로 된 하위문화를 가진 경우가 많다. 이런 조직에 새 CEO가 부임하면 기존의 모든 문화적 활동들이 올스톱된다. 들여다 보자.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CEO는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전파하고 싶다. 한 조직의 수장에 오른 만큼, 성공적이었던 지난 궤적을 담은 자신만의 성공 철학을 펼치고 싶은데 아무래도 전임자의 색깔이 묻어 있어서는 곤란한다. 이전까지 전임자 체제에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나 성공적으로 정착된 제도도 가차 없다.


새 CEO는 조직문화책임자를 불러 새로운 문화 키워드를 제시하고 의견을 묻는다. 바짝 엎드린 조직문화책임자는 신년 임원, 팀장 워크숍을 제안한다. 취임 일성으로 새 조직문화 키워드를 공표하고 그것들을 내재화하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 식이다. 대개 그렇다. 클리셰와도 같다.


새 CEO가 제시한 키워드는 '열정' '창의' '스피드'의 세 가지 다. 모두 좋은 개념이고 그룹 철학에도 부합한다. 좋아서 좋은게 아니라 두루뭉술한 관념어이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에 갖다 붙여도 어색함이 1도 없는 이유다. 누가 봐도 이 회사 이야기네?라는 identity 가 빠졌으니 앙꼬 빠진 찐빵이다. 왜 이 찐빵을 여기서 사먹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기존에 그럭저럭 유지되었던 '압도적 고객감동' 이란 가치는 온데간데없다.


더구나 이 회사는 MOT(Moment of Truth)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기업이다.


자신만의 철학이 있고 그것을 내재화하기 위해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은 바람직하지만, 회사의 특성, 고객의 성격과는 직접 연관성이 옅은 일반 개념을 앞세워 이전의 헤리티지를 뒤집는 사례는 놀랄 만큼 잦고 흔한다.

 

이때 내부 구성원들은 혼란스럽다. 겨우 정착된 어떤 문화를 처음부터 되갈아 엎고 새 언어를 만들고 그것을 학습하는데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 짜증 난다.


원래 했던 것이고 딱히 큰 차이도 없어 보이는데, 겉모양만 갈아서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로 비치기 때문이다. 원점에서 다시 반복되는 시지프스 형벌 같다. 어차피 초기에만 우~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해지는 이유다. 그렇게 조직문화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이전부터 지켜온 고유핵심가치가 명확하다면 이 것만은 절대로 손대지 말라. 시대의 변화, 트렌드의 흐름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지침 몇 가지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기업이 존재하는 본질, 고객과 구성원이 교감해 온 단 하나의 핵심가치가 있다면 철저히 '존중' 하고 최소한 보존을 하거나 '진화 발전' 시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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