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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과 책, 그리고 빵 한 조각

『오늘의 단상』- 1

by 현재를즐겨라

Haruka's Love letter - Hakdo (https://youtu.be/hipnkEd66hQ?si=M3DuB_EJjsGCAGbF)

음악과 함께 글을 읽어주세요.

요즘 나는 도서관으로 '출근'을 한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책과 함께 시작한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여유이려나. 다만, 나에게는 약간의 씁쓸함이 함께한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삶은 고달프다. 이 험난한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버거운데, 나를 옥죄는 세상의 '눈치'를 견뎌야 한다. 세상은 나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볼까. 한때는 기대였을 테고, 지금은 연민과 걱정이려나. 나이는 점점 차고, 그만큼 부모님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바래간다. 나는 멈춰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어느새 과거의 내가 꿨던 꿈은 흩어져가고, 오로지 나라는 존재만 남아서 하루를 견뎌낸다. 마침 또 비가 내린다. 가을장마라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면 괜스레 더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학 4년은 내내 알바만 하면서 지냈다. 처음 2년이 제일 힘들었다. 방학에는 기숙사비를 모아야 했고, 학기 중에는 당장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 후에는 국가의 주택 임대 사업 덕분에 그럭저럭 여유가 생겼지만, 나의 알바라이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것뿐이었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날 졸업시켰다. 남은 건 알바를 하면서 모았던 몇 푼의 돈과, 학자금만큼은 지켜내려고 아등바등 쟁취한 나름 높은 학점뿐이었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이라니! 스펙으로 쓸 수 있는 게 학점뿐이었던 나는 그마저 하나 남은 스펙도 '블라인드'된 처지가 됐다. 1년 정도는 직장을 구해 일을 해보기도 했다. 느낀 건 비정규직의 서러움뿐. 책임도 적었지만, 권한도 없는 자리는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계약은 만료됐고 나는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 눈이 높아서 그런가.

이런 생각이 들 때,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음악을 듣는다.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러면서 사고가 한순간에 전환되는 걸 느낀다. 나의 이 '한량' 생활의 럭키비키함이 더 부각되기 시작한다. 나름 열심히 했던 알바와 1년 간의 직장 생활 덕분에 딱히 돈이 부족하지도 않다. 게다가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고, 손 가는 대로 글도 쓸 수 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문득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20세에 빛을 보고 40세에 끝나는 삶과, 30세에 시작해서 50세에 빛을 내는 삶 중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대강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그게 그거 아닌가?"

모든 건 결국 관점의 차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의 궤적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막아낸 권율은 40세까지 한량생활을 하다가, 46세에 처음 관직을 얻었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내가 권율과 같은 위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저 위대한 사람도 그저 '놀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제법 위로가 된다. 내가 잠시 무릎을 꿇은 건 더 높은 도약을 위한 것이다. 이 응축된 에너지가 터지면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할 수가 없다. 미래는 위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이런 과대망상을 하다 보면, 사실 그 누구도 나에게 '눈치'를 준 적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자꾸 눈치를 주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나는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기대했고, 그 모습이 좌절된 지금의 나 자신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물러 있는 반면, 주변 사람들이 나아가는 것을 보며 그저 걱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보다 나를 믿어줘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인데 말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또 다른 부정적인 생각을 낳을 뿐이다.

그래도 나에게 하나의 꿈이 있다면, 한 잔의 커피와 빵, 그리고 책. 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이다. 지금 나는 커피 한 잔을 사와서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빵 한 조각을 입에 머금을 것이다. 나는 이미 꿈을 이룬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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