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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_기부네

Kibune, Kyoto, Japan

by 푼크트

기부네, 교토 북쪽 산자락 깊숙이 숨은 작은 신비의 마을.

비 오는 날이면 안개가 능선을 타고 내려와
기부네강(貴船川, 기부네가와)을 덮고,
그 위로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이끼 낀 돌계단이
여행자의 발걸음을 조용히 초대한다.


기부네구치(貴船口) 역에서 내리는 순간,
맑고 투명한 공기가 숨결처럼 가슴을 채운다.
바람은 숲의 피부를 닮았고,
첫 향은 젖은 삼나무 잎에서 피어나는 청량함,
그 위에 흙과 돌, 그리고 오래된 나무의 부드러운 노트가 겹겹이 쌓인다.
맑은 공기 속에는 물안개와 솔잎 향이 흐르고,
기온에 실려 오는 산새의 울음소리조차도 향기처럼 느껴진다.


기부네신사(貴船神社)로 향하는 기부네 가도(貴船街道)에는
붉은 도리이와 등롱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릴 적 그림책 속에 들어온 듯한 기시감.
촉촉한 돌길 위로 뿌려진 단풍잎들은
젊은 날 머릿속에 그리던 ‘조용한 일본’의 이미지가
한 장면 한 장면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다.


계곡 옆 가와도코(川床) 식당에 앉으면
차가운 물 위에 놓인 다다미 자리가 발끝을 시원하게 감싼다.
한 그릇의 나가시 소멘이 흐르는 물을 따라 흘러오고,
그 향기 속엔 유자의 산뜻함,
방금 딴 시소 잎의 싱그러움,
그리고 살짝 끓인 간장 육수의 깊고 단아한 맛이 숨어 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감칠맛 너머로
계곡 바람이 실어다 주는 나무 향과 물내음은
그 어떤 향수보다 순하고도 정직하다.


식사 후에는 오쿠노미야(奥宮)까지 천천히 걷는다.
기부네신사의 깊은 속내를 간직한 이곳은
사람의 기척보다 자연의 호흡이 먼저 느껴지는 공간.
삼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가늘게 내려앉고,
그 햇살 위로 머금은 이끼와 소나무의 향이 고요하게 번진다.


오후가 되면, 좁은 골목 끝에 자리한 작은 찻집에서
따뜻한 말차 한 잔을 마신다.
찻잔을 감싼 두 손 끝에 닿는 온기,
달지 않은 단팥 향이 조용히 퍼지고
그 향은 마음까지 함께 데운다.
기부네의 향기는 언제나 절제되고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기부네천만궁(貴船天満宮)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산책길에서는
가끔 향이 되어 다가오는 건
장작이 타는 냄새와 함께 흐르는,
누군가의 조용한 기도 소리 같은 공기.
정적 속에 숨은 따뜻한 감정,
그것이 이 마을의 저녁을 구성한다.


밤이 깊어지면,
계곡 물소리는 더욱 또렷하고,
등롱의 불빛은 바람에 살짝 흔들린다.
가와도코 식당들에서는 마지막 접시들이 치워지고
그 아래 흘러가던 물도
조용히 하루의 기억을 따라 떠내려간다.

여행자는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겁던 마음의 일부를 내려놓는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그 속에 담긴 향기는 몸을 감싸듯
깊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기부네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침묵은 향기로 가득하다.
숲의 숨결, 물의 온기, 신사의 기운,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 마을 전체가 하나의 향처럼 다가온다.

돌아서는 길,


기부네가 속삭인다.
“이 고요한 향기,
너의 바쁜 삶 사이 어디쯤에서
다시 조용히 피어날 거야.”


그래서 기부네는 풍경으로 남기보다,

향기로 기억되는 마을이다.


장소정보(구글맵 링크)

https://maps.app.goo.gl/iHdgLvC1AUzwEse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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