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나에게 불편하거나 불만인 상황’에서 일어난다. 직장에서 자신의 기대보다 많은 급여를 주고, 칭찬을 자주 들으면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열심히 일했지만, 상사가 너무 게으르다고 야단치거나 이익이 많이 났지만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불만을 드러내게 된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 불이익을 당할 때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갈등의 이런 속성을 고려할 때 취업보다는 퇴직으로 인해 갈등이 더 많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취업한 회사가 오랫동안 바랐던 곳이 아니더라도 취업 전 불편했던 상황이 많이 사라지면서 갈등도 함께 해소된다. 반면, 퇴직은 취업과 달리 ‘시간’ 빼고는 모든 것이 힘들어지고 불편해진다. 이로 인해 퇴직자는 다양한 갈등과 싸워야 할 수 있다.
퇴직 전보다 퇴직자에게 많아지는 것은 시간이다. 하지만 여유 시간이 많아진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퇴직자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일상에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퇴직으로 인해 배우자는 자유로운 시간 사용이 불편해지면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때 퇴직자가 가사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배우자로서는 퇴직 전보다 오히려 가사 부담이 줄어 퇴직자의 존재 자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퇴직으로 인한 큰 갈등 요소는 줄어들 수 있다.
가족 사이의 갈등은 돈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퇴직 후 퇴직자는 정체성 상실과 역할 변화로 인한 불안함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초조함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 상태가 된다. 불안함과 초조함으로 인해 심리적 안정감은 떨어지는데 이것은 감정 조절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내면에 쌓인 불안과 초조함은 사소한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짜증을 내게 만든다. 가족의 사소한 작은 말이나 행동에도 과민하게 반응하여 불필요한 언쟁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족에게 과도하게 간섭하거나 통제하려 들 수 있다.
반대로 무기력감에 빠져 가족과의 대화를 회피하고 고립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역시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서운함이나 답답함으로 다가와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퇴직자의 간섭은 ‘나처럼 퇴직 후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라고 아름답게 포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의 간섭이나 질책이라도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는 가족으로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이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할 수 있다.
비용과 관련한 갈등도 일어날 수 있다. 퇴직자의 경제 사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럴 때 모임에서의 비용 부담은 공평하게 분담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 돈을 아끼려는 사람이 있다. 어쩌다 한 번이라면 넘어갈 수 있지만, 모두가 여유가 없어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있는 상황에서 이쪽 모임에서 아낀 돈으로 다른 모임에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면서 비난하게 된다. 이때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취미 활동이나 커뮤니티에서도 갈등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갈등을 조심해야 한다. 퇴직 후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과 모임을 함께 할 때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반말하거나 지시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반말하거나 뭔가를 시키면 불편해한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퇴직자가 신입으로 오면 신입으로서 행동하기를 바란다. 이럴 때 후배라는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선배에게 지시하거나 명령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갈등 해결하는 과정이나 방법에도 퇴직 전후 차이가 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배우자와 다투더라도 출근을 해야 해 두 사람 모두 잠시라도 냉각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이 시간에 갈등의 원인을 찾고,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다. 갈등이 멈춘 이런 틈이 갈등의 악화를 막고, 해결을 돕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퇴직 후에는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부부 싸움이 시작되면 승패가 갈릴 때까지 갈 수 있다. 부부 싸움을 해본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부부 싸움이 시작되면 감정이 고조되면서 상대를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말처럼 상대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우자에게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공격을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고 한쪽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전쟁이 계속된다. 이때는 주로 상대의 아픈 부분을 공격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공격을 당하는 사람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