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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세 김일두는… 올해도 '전사자 김일두'를 참배했다

조선일보 2018.06.06

by 밀덕여사 Mar 22. 2024

오늘 현충일… 동명이인의 전몰용사 묘비 찾아 헌화하는 '나라 지킴이 고교 연합'


현충일 하루 전인 5일 오후 12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6·25 참전 용사가 묻힌 14-1묘역에 70대 신사가 들어섰다. 국화 한 송이를 손에 든 이은호(77) 전 연세대 교수였다. 이씨는 한 묘비 앞에 국화를 놓았다. 묘비명은 고(故) 이은호 육군 상병. 묘비에는 '1953년 9월 6일 강원도 양양에서 순직했다'고 새겨져 있었다. 이씨는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 앉아 있었다. 그는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오래전 나라를 위해 싸우고 순국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찡하다"며 "앞으로도 매년 6월 5일 찾아오려 한다"고 했다.


5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32묘역에서‘나라지킴이 고교연합’회원들이 6·25 전몰 용사들을 위해 묵념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이날 연고자가 없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묘비를 찾아 꽃을 바치고 산화한 용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이씨는 지난해 '나라 지킴이 고교 연합'에 가입하면서 동명이인 참전 용사 묘지를 찾게 됐다. '고교 연합'은 2008년부터 매년 6월 5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동명이인 용사를 참배해온 김일두(77) 전 코오롱건설 대표의 주도로 시작됐다. 김씨는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처음 국민학교에 입학한 1기생이다. 항상 '국민 주권 교육을 받은 첫 세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나라를 위해 산화한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2000년부터 매년 6월 5일 현충원 참배에 나섰다. 9년째인 2008년 6월 현충원에서 우연히 자신과 이름이 같은 6·25 전몰 용사의 묘비를 발견했다.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김씨는 "같은 김일두인데 이분은 싸우다 묻혔고, 저는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며 "현충일이 됐는데도 꽃 한 송이가 없는 것을 보고 맘이 아파 꾸준히 참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숨져 참배객이 없는 묘비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서울대 동창인 정충남(76) 전 경기신문 사장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해병대 출신으로 베트남 참전 용사인 정씨는 그 길로 현충원으로 달려가 같은 이름인 고 정충남 육군 병장의 묘비를 찾아내 참배했다. 정씨는 "김 전 대표의 뜻에 동감해 11년째 고 정 병장의 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발길에 경기고·서울대 동창 10여명이 합류했다. 정식 모임이 결성된 것은 작년 2월. 서울고·용산고 등 서울 5개 고교 출신이 가세해 모임명을 '나라 지킴이 고교 연합'으로 붙였다. 모임 소식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퍼지면서 참여 인원이 점점 불어났다. 1년여 만에 전국 80여개 고교 동창 500명이 참여 의사를 전해왔다. 김씨와 정씨가 씨를 뿌린 '6·25 전몰장병 현충원 참배하기 운동'뿐 아니라 나라를 위한 여러 활동에 뜻이 있는 이들이었다.

5일 오전 11시 현충원에는 회원 100여명이 모였다. 김씨는 참배에 앞서 참배 회원 한 명 한 명을 같은 이름의 전몰 용사와 이어줬다. 올해로 2년째 참배를 한다는 안정희(76)씨는 "동명이인 용사를 3명이나 찾았다"고 했다. 시신을 찾지 못해 위패만 모신 고 안정희 이병을 비롯해 하사와 소령까지 3명이 있었다. 안씨는 "고 안 소령의 묘는 유족이 관리를 잘하고 있어 비슷한 이름의 안정호 이등중사까지 3명의 묘비에 참배했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회원들은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과 재일학도의용군 위령비에 참배하고 각자 김씨가 이어준 용사들을 찾아갔다. 김씨는 뒤늦게 참배 의사를 밝혀 동명이인 용사를 찾지 못한 회원 38명을 이끌고 6·25 전몰 용사가 묻힌 32묘역으로 갔다. 회원들은 연고자가 없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묘비를 찾아 꽃을 바쳤다. 김천만(77)씨는 들고 있던 흰 국화를 고 이수용 육군 용사의 묘에 올려놨다. 김씨는 "묘비에는 대개 사망 당시 계급·일시·장소가 나와 있는데 이분은 계급이나 사망 장소가 없는 데다 묘비가 많이 닳아 있다"며 "해마다 이분을 찾아와 나라를 위해 바친 숭고한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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