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26
유영옥 경기대 명예교수, 10년째 전국 곳곳 발로 뛰며 300여명 국가유공자 등록 도와
일흔 살 노(老)교수는 아직도 노병(老兵)을 찾고 있다. 유영옥(70) 경기대 명예교수는 6·25전쟁에 참전했지만 국가유공자에 등록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유공자 등록을 돕는다. 지난 10년간 그가 찾은 미등록 참전용사·유가족이 300여명쯤 된다.
6·25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은 90만명. 이 중 38만여명은 아직도 국가가 찾지 못했다. 미등록 참전용사는 명예수당(월 30만원) 같은 보훈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훈학을 전공한 유 교수가 노병을 찾아나선 것은 2009년부터였다. 정전(停戰) 55년 만인 2008년에 정부는 6·25 참전용사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보훈제도 발전을 위해 2002년 한국보훈학회를 창립하고 2005년 '국가보훈학'을 펴낸 유 교수는 2005년 6·25 참전자가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을 때도, 2008년 '국가유공자'가 될 때도 "예산이 없다"는 국회와 보훈처를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유영옥 경기대 명예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현재 베트남전 참전용사 2명이 유 교수의 도움을 받아 국가유공자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작은 사진은 유 교수의 도움으로 국가유공자가 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고(故) 차봉익옹의 묘 옆에 육군 장교가 된 차옹의 손자가 서 있는 모습.
유 교수는 노병들을 대상으로 국가유공자법 강의도 맡았다. 2009년 2월 서울의 한 강연장에서 육군 중령 출신인 고(故) 차봉익(당시 77세)옹이 유 교수를 찾아왔다. 6·25전쟁 마지막 전투인 금성지구 전투에 참여했던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탓에 수십 년간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차옹은 "국가유공자 등록을 도와달라"고 유 교수에게 부탁했다.
유 교수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차옹의 집에 찾아가 직접 서류를 만들었다. 차옹은 3년 뒤인 2012년 별세해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차옹의 아들 차승만(55)씨는 "유 교수님이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주셨다"며 "국가유공자인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차옹의 손자)이 육군 장교가 됐다"고 감사를 전했다.
이 일을 계기로 유 교수는 지방 강연을 다닐 때마다 '사람 찾기'에 나섰다. 노병들이 옛 전우 이야기를 하면 귀를 기울였다. "○○마을에 누가 산다" "○○○가 아파 거동을 못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직접 그 집으로 달려갔다. 많은 참전자들이 법이 바뀐 줄 모르거나, 한글을 몰라서 국가유공자로 등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 교수의 연락을 받은 참전자들 가운데는 "등록해준다면서 돈 달라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유 교수는 "사회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참전용사들이 어려운 생활 속에서 남을 믿지 못하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정부도 2014년부터는 직권으로 6·25 참전 유공자를 찾고 있다. 지금까지 생존자·유족 6833명, 사망자 3만여명을 확인했다. 국가보훈처는 국방부 참전자 명단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자료를 비교해 신상이 확인되면 등록 안내서를 보낸다. 보훈처 관계자는 "후손 없이 사망했거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과 국방부 자료가 다르면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유 교수는 6·25 참전용사를 찾는 과정에서 베트남전 참전자들을 알게 돼,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등록하는 일도 돕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베트남전 참전자 32만명 중 약 1만명이 미등록 상태"라고 했다. 유 교수는 보훈 선진국으로 미국을 꼽았다. 각급 학교마다 그 학교 출신의 참전자 이름을 본관 건물에 걸어놓고, 참전자의 집에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를 붙여 예우한다는 것이다. "보훈 혜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목숨 걸고 나라 지킨 이들을 존경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