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2
우연이었다.
길 건너에 있던 동물병원..
작은 횡단보도 앞에 우리는 서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자며 남편의 손을 잡아끌어도 움직이질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혼자서 성큼성큼 동물병원 앞으로 가더니 고양이가 있다던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내 작은 키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
이 앞을 두 번이나 지나가게 되다니..
이것도 인연인가 싶어 고양이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싶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동물병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띠리리리링~
병원문이 열리자 요란하게 벨이 울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동물병원은 처음이었다.
작은 병원이었는데, 벽면 여기저기 강아지, 고양이 간식과 장난감이 복잡하게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안쪽으로 진료 보는 공간도 보였고, 더 안쪽으로는 병실도 보였다.
비좁은 공간에 물건이 많아서인지 정리가 된 것 같은데도 꽤나 어수선해 보였다.
그리고 반대쪽 전면 유리창 쪽으로는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유리 케이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제일 아래쪽에는 강아지가 4~5마리가 있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하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 봤다.
아니..
고양이 자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던가?
얼굴이 비좁을 정도로 큰 눈망울..
톡 치면 부러질 듯 연약하고 작고 조그마한 하얀 고양이가 유리 케이지 안에서 냥냥거리고 있었다.
작은 아기 고양이..
나도 모르게 그 녀석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홀린 듯 손가락을 살짝 밀어 넣었다.
그랬더니 바로 달려와 내 손가락을 껴안고 놀아달라는 듯이 매달렸다.
어찌나 작은지 한 손에 그러쥘 수 있을 정도였다.
뭐지..?
이 쪼끄맣고 작은 생명체는...???
먼치킨 나폴레옹 숏레그
하얀 가운의 남자가 말해주었다.
당시 나는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먼치킨이 뭔지 숏레그는 또 뭔지..
나폴레옹은 또 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숏레그라고 하니 다리가 짧다는 것 같은데..
아기 고양이를 본 적도 없어서 가늠 할 수 없었다.
살면서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생김새도 바로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나는 동물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내가 너무 홀린 듯이 보고 있었나 보다.
그 하얀 가운의 남자는 이 때다 싶었는지 그 작은 고양이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먼치킨이랑 페르시안이 섞인 품종인데 정말 인기 있는 품종이고 어쩌고 저쩌고..
장화 신은 고양이를 아냐? 이게 바로 그 장화 신은 고양이라느니 등등등
끊임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하얀 아기 고양이가 있는 유리 케이지 위에 아이의 품종, 태어난 날짜, 가격이 적혀있었다.
먼치킨 나폴레옹 숏레그
2020년 2월 15일생
160만 원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 눈이 다시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녀석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하얀 가운의 남자는 말이 점점 빨라졌다.
원래 고양이는 2개월령이 전후로 분양이 되었어야 했는데 이 시기를 놓쳐서 더 이상 오래 못 데리고 있으니 "할인"을 해주겠다는 거였다.
그날이 5월 31일이었으니 그 고양이는 이미 3개월 반이 넘어가 4개월령이 되어가고 있었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숨이 막혔다.
뭔가 불쾌감이 계속 올라왔다.
가격이 어쩌고
할인이 어쩌고
3개월이 어쩌고..
하얀 가운의 남자가 내뱉는 단어들이 왜 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불쾌감을 주었다.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이 올라왔다.
말 없는 내가 돈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1차 예방접종도 병원에서 해서(3개월 넘어가서 어쩔 수 없이 해줬나 보다) 예방주사비도 따로 받아야 하는데 서비스라고 생각하라느니, 여기가 병원에서 분양하는 거라서 관리도 잘 되어 있어서 건강하다느니 어쩌고 저쩌고 계속 떠들어댔다.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입밖으로 아무 말도 뱉을 수 없었다.
고양이를 쳐다보며 침묵하는 내게 남자가 제안하는 가격도 계속 내려갔다.
130만 원
110만 원
90만 원
.
.
나도 모르게 하얀 가운의 남자에게 그만하라고 했다.
그리고 데려가겠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옆에 있던 남편도 놀랬다.
계속 뭔가 갑갑하고 기분이 나빴다.
가격, 할인, 서비스..
뭐 이런 말들과 어떻게든 팔아넘기려는 그 남자의 말투..
모든게 기분나빴다.
그 뒤로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고양이를 종이박스에 담아준다고 했다.
물건도 아닌데 박스라니..
더 화가 나서 벽에 걸린 이동장 중 아무거나 달라 하여 그 자리에서 상표를 다 뜯어버리고 아이를 안에 넣었다. (나중에 보니 강아지용이었다)
고양이 용품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들고 나왔다.
얼마가 결제됐는지도 확인도 안하고 나와버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 집사가 되어버렸다.
충동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