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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Aug 09. 2024

함께 하는 무더위 속의 연대

온열속 환자 발생!

새벽 5시 40분, 분류터미널은 평소보다 한층 더 부산스러웠다. 소음과 발걸음 소리가 얽혀 새벽 공기를 가르는 가운데,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터미널을 흔들어놓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장기사 형님이었다. 다리도 좋지 않은데도 고집스럽게 일을 해오던 그가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구토와 발열. 어제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작업하다가 온열증상을 겪었다고 했다.


이 소식은 동료들 사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장기사 형님은 늘 오전 중에 일을 끝내고 자랑스레 퇴근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가 자랑했던 조기 퇴근은 무리해서 일을 마쳤던 결과였던 모양이다. 동료들은 그가 아픈 이유를 곱씹으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기사가 출근하지 못한 상황에서, 박팀장은 서둘러 구역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전에 장기사 형님이 휴가를 갔을 때와 똑같이 구역을 재배치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때 경험이 있어, 구역 분배는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모두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처리하려고 애썼다.


그러던 중, 오전 6시 정각이 되자 황기사가 터미널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얼굴빛이 평소와 달리 창백해 보였다. 평소 씩씩하고 활기찬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황기사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박팀장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기사에 이어 황기사마저 몸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터미널의 공기는 다시 한 번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박팀장과 황기사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이윽고 박팀장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옆자리인 김기사는 이미 장기사의 구역을 3단지로 받았기에 황기사의 구역마저 돕기에는 상황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일부는 맡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기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거야? 속이 안 좋아? 땀도 나는 것 같은데? 박팀장이 구역을 분배해 주기로 한 거야?"


"아니, 방금 이야기를 하고 갔는데 이후에 아무 이야기가 없어."


"??? 몸이 많이 안 좋은 거야? 일을 할 수는 있어? 확실하게 이야기해 봐, 그래야 도와주든지 하지."


"몸 상태는 많이 안 좋아. 하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 같아..."


"... 기다려봐, 내가 이야기 다시 해볼게."


김기사는 박팀장에게 가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기사도 많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구역을 분배해서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냐, 할 사람이 없는데 어쩌겠어. 진통제라도 먹고 해야지."


김기사는 박팀장의 대처에 난색을 표했지만, 그 역시 이미 장기사의 구역을 지원하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뜻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김기사는 아파하는 황기사를 모른 척 내버려 둘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박기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도와줄게요. 오늘 배달 수량도 별로 없고, 황기사의 구역은 지난번에 들어가 봤기 때문에 할 수 있어요."


"오, 그래? 잘됐네. 그렇게 하자, 그럼."


김기사는 박기사의 협력에 다시 얼굴에 활기가 띄었다. 기분이 좋아진 김기사는 바로 황기사에게 가서 박기사가 도와주기로 했다고 하며 구역을 분배해 달라고 했다. 황기사 또한 자신의 구역을 박기사에게 설명해 주면서 상황은 종료되는 듯했다. 김기사는 내친김에 황기사의 남은 구역을 모두 달라고 했다. 그렇게 김기사가 물량을 정리하고 있는데, 맨 앞자리에 있던 권기사가 또한 김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저에게도 물량을 주세요. 저도 도와줄게요. 형님만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1단지 해드릴게요."

"오, 그래? 그럼 나야 좋지. 그래, 그렇게 하자."


갑작스런 도움에 김기사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사방에서 도와준다 하니 고마웠다. 자신이 아픈 것도 아닌데 발벗고 나서는 동료들의 모습에 김기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황기사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 받은 물량을 정리하고 김기사 또한 배송에 나섰다.


날씨가 덥고 비가왔다가 습해졌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씨탓에 사람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듯 싶었다. 평소 무리하지 말고 일이 끝나면 최대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일이 끝나도 아이를 돌봐야 하거나 생계를 위해 또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 더위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며 싸우고 있지만 여름철 더위에는 열심히 살고자 하는 근성이 오히려 해가 되는듯 싶었다.


김기사 또한 너무 남만 도와주다 탈이 날까 우려되지만 그래도 몸이 아직 아프지 않기 때문에 해줄수 있을때는 해줘야 겠다고 판단했다. 훗날 어떤 도움을 바란다기 보다는 그냥 할만 하니까 해줬다가 맞는 해석이라 생각했다.


장기사와 황기사가 무사히 쾌유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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