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놀이가 제철인 수영장 가는 길
8.15 광복절이면 내복을 입고, 4.5 식목일에 내복을 벗을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다. 그런 내가 수영하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계절이 있다. 바로 가을.
누군가는 무더운 온도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여름이 수영하기 좋다고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부터가 진짜 수영하기 좋은 시기다.
10월이 깊어지며 상강(霜降)이 다가온다.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짙어지는 때. 길을 걸으며 그 의미를 온몸으로 알게 된다.
평소 산책은 맑은 하늘과 푸른 나무를 바라보느라 위를 올려다보며 하는데, 상강 즈음이 되니 자꾸만 땅을 바라보며 걷게 된다.
수영장 가는 길에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록과 노란색이 섞여 있던 그 나무가 어느새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그 아래로는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며 바스락거린다.
"이렇게 예쁜 길을 지나 수영장에 간다니, 사치 아닌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는다.
가을 하늘은 유독 높고 파랗다. 단풍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여름과 다른 부드러운 온기를 품고 있다. 발밑에는 갈색, 주황색, 빨간색 낙엽이 깔려 있고, 고개를 들면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 계절의 색감은 참 풍성하다. 초록 일색이던 여름과 달리, 가을은 자연이 가진 색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 화려한 빛깔 사이를 지나 도착한 수영장.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더욱 특별해진다.
가을 풍경을 감상한 뒤 물속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상쾌하다.
따뜻한 실내 수영장 물은 바깥의 선선한 공기와 대비되어 더 포근하게 느껴진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방금 지나온 풍경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단풍나무, 낙엽, 높은 하늘. 그 모든 것들이 수영을 더 즐겁게 만든다.
여름 수영이 무더위를 식히는 해방감이라면, 가을 수영은 계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누리는 사치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 올 때와는 다른 각도로 단풍나무를 바라본다. 석양빛을 받아 더욱 붉게 타오르는 나뭇잎들. 며칠 후면 저 잎들도 땅으로 떨어져 낙엽이 될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낙엽이 더 수북이 쌓여 있을까, 아니면 나무가 거의 앙상해져 있을까.
계절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 변화의 순간들을 수영장 가는 길에서 놓치지 않으려 한다.
제철 과일이 가장 맛있듯, 제철에 누리는 행복도 있다. 가을에는 가을의 수영이 있고, 가을 길을 걷는 행복이 있다.
당신의 수영장 가는 길에는 어떤 가을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도 나는 단풍놀이를 하듯 수영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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