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수영은 길다
"형광색 오리발을 끼고 느긋하게 몇 번이고 레인을 왕복하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죠. 나도 저렇게 오래 수영하고 싶다고."
- 황선우 X 김혼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중
새벽 6시. 수영장의 어둠이 걷히는 시간이다.
센터 문이 열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각자 준비운동을 하다가 물에 들어간다.
종종 만나는 어르신 두 분이 계신다.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어김없이 오신다. 한 분은 평영을 여러 바퀴 하시고 물속을 걸으시다 가신다. 다른 분은 한참을 걷고 스트레칭을 하다가 마무리로만 자유형 1바퀴, 배영 1바퀴 하신다. 두 분 다 젊었을 적엔 수영에 진심이셨다고 한다. 이제 연세가 드셔서 물속 걷기를 주로 하신다.
오늘도 수영장에 들어가니, 레인 끝에서 누군가 반갑게 손을 흔드신다.
연보라색 수모와 수경을 쓰신 진짜 할머니시다.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아흔쯤 되어 보이신다.
"오늘, 덥다. 땡볕이니 모자나 양산 쓰고 다녀요. 조심해야 해."
어르신이 더 조심하셔야 할 텐데, 내 걱정을 해주신다.
여든쯤 되어 보이는 젊은 할머니는 인사를 건네면 항상 "하하하~" 웃으시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신다. 신상 수영복을 장만하셔서 "고우시네요" 했더니 또 하하하 웃으신다.
학기 중엔 아침 7시 반, 방학엔 새벽 6시가 나의 입수시간이다. 아이 등교 시간에 맞춰 나서거나,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다녀온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엔 새벽이나 오전 강습이 없다. 오직 자유수영만 있다. 자유수영을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분들은 대개 수영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내일의 오수완을 위해 오늘을 사는 수영에 미친 자들. 일명 수친자.
아무리 내향형이라도 매일 수영에 진심인 분들을 1년 넘게 만나다 보니, 목례에서 어느덧 간단한 인사까지 하게 됐다. 아저씨든, 젊은 할머니든, 진짜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말이다.
나랑 같은 레인을 쓰던 아저씨가 접영을 열심히 하고 계셨다. 힘접영에 물을 여러 차례 먹는 나를 보시던 옆 레인의 어르신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리 와서 수영해요. 나는 한가해. 시간이 많으니 걷기 먼저 하면 돼요. 이리 와서 편안히 수영해요."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어르신은 이미 레인 끝으로 비켜 서 계셨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레인을 옮겼다.
땅에서 만났다면 서로 인사할 일 없을 것 같은 우리. 공통사가 하나도 없는 우리. 하지만 물속에서만큼은 달랐다. 이런 작은 친절들이 수영장 곳곳에서 일어난다.
배영을 하시던 어르신의 물안경이 물속으로 떨어진 날도 있었다. 이마에 살짝 걸쳐두셨던 게 수영하시다 빠진 모양이다. 나는 잠수해서 바닥을 더듬었다. 없다. 한참을 헤매는데, 옆 레인에서 잠영하던 아저씨가 물안경을 들고 올라오셨다.
"여기 있네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어르신이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아저씨는 손을 저으며 다시 헤엄쳐 가셨다.
말없는 배려가 물살을 타고 흘렀다.
책 속의 "형광색 오리발을 끼고 느긋하게 몇 번이고 레인을 왕복하는 할머니들"의 모습. 나의 수영장에도 있다.
연보라색 수모를 쓰고 평영을 하시는 어르신, 신상 수영복을 입고 물속을 걷는 어르신.
나이도, 관심사도 다 필요 없다.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친구다. 40대이건 90대이건.
나이가 중요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나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니. 물이 만들어주는 평등함이 아닐까. 물속에서는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물과 만나고 있을 뿐이다.
레인을 양보해주시던 어르신의 손짓이 떠오른다. 물안경을 건네주던 아저씨의 미소가 생각난다.
책상에 앉아 시원한 물속을 상상한다.
내일은 내가 먼저 손 흔들어드려야지. 그것도 양손으로, 매우 크게.
인생은 짧고, 수영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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