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다시 나를 찾기까지
물에 몸을 맡기며 잡념을 내려놓는다. 글라이딩과 숨쉬기만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물 위에서 미끄러진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느끼게 된다. 매일 수영을 하지만, 물과 몸은 매번 다르다. 세심한 변화를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수영이 즐겁다. 좋다.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나 될까?
우선, 허리디스크 통증 발생 횟수와 강도가 줄었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던 날이면 허리가 아작났었다. 앉았다 일어서려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 그 '아이고'가 줄었다. 겉으로 티는 안 나지만, 코어 근육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허리 병원 신세는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두렵지는 않다.
둘째, 하지정맥류 다리 저림이 덜해졌다. 오후가 지나면 종아리가 욱신거리고 밤에 자다 다리에 쥐가 나서 깨는 날도 많았다. 수영을 하면서 다리 혈액순환이 좋아졌다. 물의 압력이 다리를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고, 발차기 동작이 종아리 근육을 깨운다. 요즘은 다리가 한결 가볍다.
셋째, 낮아진 자존감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뭘 해도 잘 안 풀리던 시기가 있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초라한 내 모습만 보였다. 수영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25미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1.7킬로를 헤엄친다. 물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매일 기록하며 '나도 할 수 있구나'를 확인한다. 물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넷째, 물은 완벽한 명상 공간이다. 물속에서는 소음이 차단된다. 들리는 건 내 호흡 소리와 물이 찰랑이는 소리뿐이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물에 들어가면 생각이 정리된다. 팔을 저으면서, 발을 차면서, 숨을 쉬면서.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 마음을 비운다. 수영장을 나올 때면 머리가 맑아진 걸 느낀다.
다섯째, 온갖 스트레스는 수용성이다. 화가 나도, 억울해도, 답답해도 물에 들어가면 된다. 전력으로 발차기를 하면 속이 후련하다. 물을 세게 칠수록 스트레스가 물에 풀어진다. 물은 내 감정을 다 받아준다. 수영장 밖으로 나올 때쯤이면 화도, 답답함도 물에 씻겨 내려간다.
여섯째, 알록달록 물옷을 입고 패셔니스타가 된다. 땅 위에서는 검은색, 남색, 회색 옷이 다이다. 겨울에는 추위를 막아주고, 여름에는 어느 정도의 노출만 가려주면 되는 용도다. 물옷은 다르다. 하늘색 수영복에 분홍색 수경, 보라색 수모까지. 알록달록하고, 또 아주 가끔은 형광색 무늬까지. 이런 다채로운 색감의 옷을 또 언제 입겠나. 무채색을 탈피하고 알록이들로 패션 자신감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은 수영장뿐이다. 수영 가방을 챙길 때마다 '오늘은 어떤 조합으로 입을까'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곱째, 나만의 갈 곳을 준다. 집도 아니고, 회사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 한 달에 두 번 휴관일만 빼고, 매일 나를 반겨주고 내가 갈 수 있는 곳. 루틴이 생기니 삶에 리듬이 생겼다. "오늘은 수영 가는 날"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달라진다. 수영장이라는 나만의 장소가 생긴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여덟째,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수영하고 나면 배가 고프다. 엄청나게 고프다. 그럴 땐 먹어도 된다. 아니, 먹어야 한다. 운동했으니까. 떡볶이도, 치킨도, 피자도 당당하게 먹는다. 오늘은 혼자서 소고기 등심도 구워 먹었다. 배춧잎에 큼직한 최상급 한우를 죄책감 없이 행복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수영할 이유는 충분하다. 맛있게 먹고, 또 수영하러 가면 된다.
아홉째, 수영전도사가 되었다. "수영 진짜 좋아. 한번 해봐." 요즘 누구를 만나든 수영 이야기를 한다. 허리 아프다는 사람에게, 스트레스 받는다는 사람에게, 운동 시작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수영을 권한다. 누군가를 전도한다는 것, 그건 내가 그만큼 확신한다는 뜻이다. 수영이 나를 바꿨으니, 다른 사람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가끔 "덕분에 수영 시작했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묘하게 좋다.
열 번째,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수영은 나를 브런치 작가로 만들었다. 수영일기를 쓰고, 수영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나도 글을 쓸 수 있구나'를 알게 됐다. 물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재미.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한다는 사실. 수영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경험이다.
수영이 좋은 이유를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수영으로 볼살 리프팅 효과까지 얻게 되다니. 내일은 또 어떤 수영을 하게 될까. 내일은 수영하고 나오자마자 수영일기를 써야지. 쓰기 위해서 수영을 해야지.
수영할 이유를 매일 하나씩 더하고 있다.
수영이 좋아서, 수영이 필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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