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열고, 닫고, 또 채우는 일상
수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앞에 언제나 이 가방이 있다. 엘레베이터에서 옆집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그 가방은 뭐에요?"
"수영가방이에요. 수영인의 필수 품목들이 다 이 안에 있어요."
가방을 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수영복, 수경, 수모. 수경에는 안티포그를 꼼꼼하게 발라두었다. 김이 서리지 않으려고.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안전이다. 수모도 꺼내 보고 다시 집어넣는다. 오늘은 이것으로 머릿결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을까, 하고.
소분 샴푸, 트리트먼트, 컨디셔너. 세 개의 작은 병들이 가방 한쪽을 차지한다. 수영장 물에 상할 머리카락들을 위한 작은 배려다. 이들을 꺼냈다가 다시 담을 때마다, 내 머릿결을 돌려받는다는 기분이 든다.
로션, 아이라이너, 쿠션, 선크림. 수영 후 맨얼굴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니,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니라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들이 있어야 비로소 내가 된다.
스포츠센터에서 제공하는 타올, 비누, 샤워타올, 스킨, 로션, 바디로션은 굳이 챙기지 않는다. 무게를 줄이고, 매번 신선한 것을 쓸 수 있으니까.
수영장 락커에서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수영복을 꺼내고 입는다. 수경을 벗겨낸다. 수모를 뒤집어쓴다. 가방에서 나온 것들이 내 몸을 감싼다. 이건 단순한 준비가 아니다.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내 몸을 물에 맡길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
물에서 나온 후 다시 가방으로 향한다.
샤워실에서 소분 샴푸를 덜어낸다. 손에 묻은 염소 냄새를 비누로 박박 밀어낸다. 트리트먼트를 머릿결에 얹는다. 매번 같은 손길로, 같은 순서로. 이 작은 일관성이 내 머릿결을 지켜낸다.
열탕과 냉탕을 오간 몸, 건식사우나로 근육을 풀어낸 몸이 마지막 샤워기 아래로 돌아온다. 이제는 컨디셔너를 머리에 얹어줄 차례다. 머리카락이 미끄덩거릴 때까지 컨디셔너를 듬뿍 바르고, 담궈둔 수영복의 물기를 손으로 꾹꾹 눌러 짠다. 그다음 물로 컨디셔너를 헹궈낸다. 거울에 비친 나는 조금 다르다. 더 맑고, 더 피곤하지만, 어떤 만족감이 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가방을 다시 연다.
수영복을 담는다. 아직 축축한 채로. 수경도, 수모도 빠뜨리지 않고 담는다. 소분 샴푸 병, 트리트먼트 병, 컨디셔너 병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바디로션을 발라 마른 피부에 한숨 돌려주고, 스킨으로 얼굴을 톡톡 두드린다. 아이라이너로 눈썹을 다시 그리고, 선크림을 바른다. 그 위에 쿠션을 펴바르며 인간의 얼굴이 된다.
다시 내가 되어간다.
가방을 담으며 오늘을 되짚는다.
물속에서 왼쪽 호흡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글라이딩이 얼마나 길었는지.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부드럽고 긴 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한다. 어깨 스트레칭은 오늘보다 더 열심히 하고, 머리로 먼저 수영을 연습하겠지.
집에 도착하면 또 가방을 연다.
축축한 수영복을 꺼내 널어둔다. 내일 아침, 뽀송뽀송한 수영복을 기대하며 소분 샴푸 병들을 체크한다. 부족한 것은 없는지, 새로 채워야 할 것은 없는지. 내일의 가방을 준비하는 것이 오늘의 수영을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어깨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 내 몸을 휴식에 담근다.
내 수영 가방에는 수영복과 수경, 그 외 작고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방을 여닫는 매 순간을 의식하는 일이다. 당신도 가방을 챙기고 있지 않은가. 당신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고, 그것들을 담으며 당신은 누가 되어가는가.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가방을 통해 우리 자신을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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