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갤러리. 내가 사는 집과 이호갤러리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5분 정도다. 나에게 행운이다. 지금 사는 집에 1월 말에 이사를 왔는데, 이호갤러리는 4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전까지는 마을 공터로, 지역 어르신 몇몇이 텃밭으로 이용한 곳이었다고 한다. 오늘, 갤러리 주인분이신 화가 선생님이 들려주셨다.
이호 갤러리로 그림을 그리러 간다. 오늘이 다섯 번째다. 뜨겁던 여름 어느 토요일 낮 시간, 골목길을 걷는 중에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호 갤러리' 건물 밖에 그려진 그림 서너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궁금했다. 전시를 하는 곳일까? 궁금증을 안고 지나쳤다. 산책하며 그곳을 지날 때마다 간판에 시선을 집중했다. 밖에 놓인 그림은 분명히 보라고 전시한 듯했다. 건물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하얀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날도 산책하며 갤러리 건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내 눈이 똥그라 졌다. 비밀을 지키려는 듯 갤러리 내부를 가리고 있던 하얀 커튼이 졎혀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보았다. 유리로 된 커다란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내 나이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여성분이 나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 주셨다. 그 이후로 그곳에서 그림을 그린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 2시간 동안.
마음을 달래려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 산책하다 만나는 작은 들꽃, 고깃배를 품은 바다, 제주도에 오니 그림으로 담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다. 그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갤러리를 찾게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니!
첫날, 선 그리기를 했다. 굵고 가는 선, 선만으로도 멋진 작품이 되었다. 둘째 날은 내가 서핑하는 모습을 색연필로 그렸다. 파도 위에 놓인 보드, 그 보드를 딛고 선 서퍼, 나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파도 탈 때의 기분을 다시 맞보다니! 바로 이거다. 나는 감동하고 싶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을 볼 때마다, 그 경험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싶다.
오늘은 갤러리에 간 다섯 번째 날이다. 네 번째 날에 이어 오늘도 정물을 종이에 담았다. 주황색 감 4개다. 유화 크레파스로 표현했다. 내가 이 감을 종이에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해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차분한 마음이다. 그래서 이 시간이 좋다. 내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시간, 모든 감정과 사건을 잊는 시간이다. 오로지 내 안의 나에 집중한다. 평안한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 주시는 화가선생님, 나는 토요일 오후에 좋은 분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