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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Aug 29. 2023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

배려 속에 숨겨진 폭력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그 말은
절대 아이한테 해서는 안될 말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낫다 



엄마는 이혼을 하려고 결심한 날에도, 이혼을 한 후에도 내가 결혼할 때까지는 이혼을 미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미 부모님이 이혼할 당시 20살이 넘은 성인이었던 내게 이 말은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볼 때는 이미 너무 참아서 곪을 때로 곪고 못 볼 것 볼 것을 다 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 아빠의 이혼의 걸림돌이 되었던 것인가? 하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부모가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책임을 진다는 명목아래 오랫동안을 부모의 전쟁 같은 싸움과 미움을 보아야 했던 아이 마음에는 시퍼런 멍이 겹겹이 쌓여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가정폭력과 전쟁 같은 싸움을 보는 내내 나는 무지 괴로웠다. 전쟁에서 아군이 아군을 쏘아서 죽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 내가 너 때문에 참고 살았다. '라는 말은 핑계처럼 느껴졌다. 나를 위해 산 날들이 매일이 무섭고 두렵고 상처였는데 나를 위해서 이혼을 미루고 기다려야 했다는 말은 본인이 미안해서 나를 위하는 것처럼 포장한 이기적이고 아주 폭력적인 말이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만저만해서 엄마와 아빠는 같이 살 수없을 것 같은데 이해해 줄 수 있냐고 양해를 구하는 편이 떳떳하고 자식에게는 홀가분 한 말이다. 









이혼하고 싶은 부모들의 착각



기혼인 내 친구 미정이는 나보다 7년을 늦게 결혼했지만 미정이의 아이 또래는 나와 비슷하다. 미정이는 늘 나와 통화할 때면 이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남편이 회사에서 오피스 와이프가 있는 것 같은데 물증이 없다. 아이만 아니었어도 별서 이혼하고 남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참 듣기 싫은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기에 모든 걸 아는 친구가 하는 말임에도 나는 화가 치민다. TV에 나와서 부부 상담을 받는 사람들도 그리고 드라마에서도 단골 대사인 " 애 때문에 참고 산다 "는 그 말. 자기가 이혼 가정에서 자라 보지 않은 탓일까? 이혼 가정의 자녀입장으로써 내가 보기에는 이혼을 망설이며 아이 핑계를 대는 사람들 대부분은 경단녀에 애엄마로 전락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 사회생활에 뛰어들고 경제적 독립을 꿈꾸는 것이 무서워서 아이뒤에 숨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난 미정이에게 묻는다 " 아이 핑계 대지 말고 네가 진짜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이미 미정이네 아이는 미정이와 미정이 남편이 매일 싸우면서 악을 쓰는 부모의 모습에 노출이 되어있다. 둘 다 그런 원수 같은 감정을 내려놓고 정말 아이를 위해 이혼을 미뤄주고 싶다면 하라. 그러나 아이 때문에 참고 이혼을 미루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부모의 이혼보다 더 못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 이혼을 미루거나 망설이는데 아이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자신이 자립할 용기나 경제적 여건이 없어서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 앞에 아이는 정말 좋은 핑계가 된다. 미정이 딸 민지는 내가 미정이네 집에 놀러 가서 놀아주고 한 번씩 자고 올 때면 내게 이렇게 말한다. " 전 엄마가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 나는 그런 민지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그래서 왜? 냐고 물으면 민지는 "엄마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미정이는 딸의 앞날을 위해 자신이 이혼을 미루겠다고 민지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라는 딸들에게 엄마가 이미 틀어진 관계를 부여잡고 나를 위해서 참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혀 온다. 마치 나 때문에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렇다면  엄마도 아빠도 자식도 가족 구성원 어느 한 명도 진짜로 행복하지 않은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맞는 것인지 부모들은 생각해 봐야 한다.









전쟁보단 이혼이 낫다



우리 엄마가 내가 결혼 후에 이혼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후회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시댁이나 남편에게 책이 잡힐까 봐이다. 그 딸이 언제 결혼을 할지 또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지 모르는 미래 자신의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그건 희생이 아니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를 매일같이 지켜봐야 하는 정서적 고문이다. 아이를 위해서 참고 산다는 그 말 참 비겁하고 두려움에 다시 도약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딱 숨어있기 좋은 말이다. 차차리 이혼을 택하는 것이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같이 짊어 지고 갈 짐이 많아지더라도 더 이상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부모가 서로를 비난하고 총질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이 될지 모른다.








이혼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에게 전 배우자에 대한 어떠한 험담도 하지 말라.
그것은 그저 아이에게 크게 상처주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발렐리 베르티넬리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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