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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May 17. 2023

부부싸움의 목격자

온 세상이 깨지는 것 같은 공포




좋은 엄마 아빠가 되기 전에 행복한 부부가 되어주세요





부부싸움의 목격자


20대에 젊은 부모가 된 저희 엄마 아빠는 사흘이 멀다고 부부싸움을 하셨습니다. 싸움의 이유는 늘 다양했지만 부부싸움을 목격하는 아이로써 드는 감정은 매번 똑같았습니다. 온 세상이 두쪽이 나고  깨어지는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이 휩싸였죠. 


어린 나이에 아이가 생기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저희 부모님께서는 서로 육아 책임 미루시는 일로 많이 다투셨습니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가난이라는 경제적 빈곤이 두 사람을 멀어지게 했습니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책임감과 희생이 필요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저를 낳게 되다 보니 다른 친구들처럼 여가를 즐기거나 유흥은 꿈도 못 꾸었죠. 오로지 두 분이 젊은 나이에 독립 아닌 독립을 하다 보니 전자제품도 없이 청소나 빨래를 해야만 했으니 힘이 드셨을 것을 압니다. 

싸움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 처해진 환경에서 제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행복한 부부가 되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싸우는 부모 옆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를 보며 전 무기력과 불안, 우울, 슬픔의 감정을 느꼈고 모든 싸움이 원인이 저에게 있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트라우마로 남은 싸움


엄마 아빠가 27살이 되던 해 저도 7살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8살에 결혼을 한 것에 비하면 저희 엄마 아빠는 너무 어린 나이에 가족을 이룬 것이죠. 일찍 아이를 낳은 것만큼 저는 어느새 자라 아빠 엄마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일찍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더 자신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엄마 아빠가 서로 육아를 미룰 때는 제 스스로가 짐짝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추장스러운 혹처럼 엄마 아빠 옆에 붙어서 살아가는 것 같아서 저는 쓸모없고 초라했습니다. 돈 문제로 자주 싸우시는 부모님을 보고 전 아무것도 사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아이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갖고 싶었던 것도 먹고 싶었던 것도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싫어서 밖에서 아이들과 한 참을 놀다가 들어간 적도 많습니다. 싸움은 점점 잦아지더니 점점 강도가 세졌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하던 싸움이 주변 기기를 던지는 지경까지 가더니 제가 고학년쯤에는 아빠 엄마의 싸움이 눈뜨고 볼 수 없는 레슬링 같았습니다. 약 40년이 된 지금도 그 소리와 장면은 그대로 제 눈과 귀에 남아있습니다.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이혼을 권유합니다


흔히 주변 친구나 지인들이 부부싸움을 하거나 이혼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부모들은 아이들 걱정을 합니다.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죠.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참고 희생하고 사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제게는 안도가 아니라 절망이었습니다. 매일 소리치고 때리고 우울한 광경을 성인이 될 때까지 보고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들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거나 미룬다는 말은 어른들만의 생각입니다. 진짜 아이를 위한다면 싸움을 멈춰야 합니다. 아니 싸움을 하더라도 아이가 없을 때 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부부가 함께 있어 행복하지 않다거나 서로가 너무 다름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때는 싸우지 마시고 이혼을 추천합니다.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남긴 트라우마는 부모가 이혼하는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오래 남습니다. 저는 참다가 제가 대학교 갈 때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이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전 마음 편히 집에 들어가서 잠들 수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종종 그때 엄마 아빠가 부부싸움에 했던 말과 행동이 선명하게 꿈으로 재현됩니다.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선명해서 가슴이 뛰고 그때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감정을 다시 느낍니다.







부부싸움은 글로 하세요


저도 결혼을 하고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남편과 저는 비슷한 듯 너무 다른 사람입니다. 심지어 자라온 환경은 180도 다릅니다. 처음 신혼 초기에는 저희도 맞춰가는 과도기라 그랬는지 정말 많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않습니다. 아이가 없을 때 싸웁니다.


아이가 있을 때 싸울 일이 있을 때는 이메일이나 카톡으로 싸웁니다. 카톡이 없던 시절에는 이메일로 싸웠습니다. 일단 글로 싸우면 불필요한 감정싸움이 줄어듬을 느낍니다. 자기 의견을 정리하고 생각해서 적게 됩니다. 중간에 서로 말을 자르거나 끼어듦 없이 논쟁을 벌 일 수 있습니다. 카톡이 대세인 요즘은 카톡으로도 싸웁니다. 우리 부부의 목표는 싸우더라도 아이가 들리거나 보게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글로 쓰다 보면 말로 하는 게 더 빠르고 쉬워 답답함을 느낍니다. 당장 달려가 면전에 쏘아붙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런데 참고 글로 화난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절정으로 화냈던 감정이 어느새 지나가고 한 풀이 꺾인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한 달 전 4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정서행동 평가를 실시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우시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고 대답했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고 전 너무 행복했습니다. 다른 항목도 많았지만 그 항목에 아이가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이 제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적어도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내 아이를 부부싸움의 목격자로 피해자로 남겨두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오늘 남편이 저 몰래 비상금이 있었는지 비싼 쏘니 해드폰을 질렀더라고요. 며칠 전 카메라 렌즈를 산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이죠. 평소에는 지출을 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한번 꽂히면 큰 돈을 펑펑 씁니다. 저는 지금도 아들이 하교한 후라 카톡에 접속해서 한마디 해줄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 웃음 )






이혼은 두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두 사람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에드워드 데블린 -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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