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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May 17. 2023

행복한 기억이 퇴색되기 전에

이혼하세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각자의 인생을 사세요.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이혼을 허락받는 부모


스무 살이 막 되었을 때 부모님은 최종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미 그전에도 엄마와 아빠는 별거 아닌 별거처럼 살았고 세 식구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다.


아빠가 남미로 해외 파견 나가셨을 때 우리 세 식구는 오랜만에 한 공간에 모였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내게 이혼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늘 그런 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타국에서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미 이혼은 다 생각해 놓고 마지막 단계에 세 나의 생각을 묻는 엄마 아빠가 잔인했다. 입으로 뱉은 단어는 나의 생각을 물어본 것이었지만 일방적인 통보였다. 별로 놀랍지도 않았지만 화는 많이 났다. 부모님이 이혼 결정이 화가 나는 것이 아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내 팽겨치는 일들의 연속이 벅찼고 숨 막혔다.









이혼을 받아들인 딸의 조건


엄마 아빠의 이혼을 받아들이면서 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가족 누가 어디서 어떻게 살더라도 서로 이 이혼 때문에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다. 울음이나 실망을 예상했던 딸이 담담하게 이혼 후의 날에 대해 먼저 제안하자 엄마 아빠는 적잖이 놀라시는 눈치였다.  이틀 후 엄마는 한국으로 급히 귀국을 하셨고 엄마 아빠는 그렇게 부부의 연을 끝냈다.


난 불편할 게 없었다. 이미 성인이 된 상태였기도 했지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던 안 하던 내 삶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늘 혼자 먹고 혼자 자고 나를 챙겨주던 부모의 울타리는 기능을 잃은 지 오래됐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면 전쟁같은 부부 싸움의 두려움에서 난 자유가 될 수 있었다.








탈선 대신 성공에 대한 발악


엄마 아빠를 신경 쓸 여유도 없이 나는 다음 학기 복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로 복학을 했다. 웬만한 데는 걸어 다니고 생리대 살 돈도 아껴야 했고 심지어 그마저도 없을 때는 휴지곽에 휴지를 여러 번 말아서 자주 화장실을 갔다. 그때 처음으로 여자로 태어난 내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런 생각도 내겐 사치였다. 눈에 불을 켜고 난 나의 다음 목표지인 대기업 입사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라서 저런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했다. 더 밝게 웃었고 더 싹싹하게 굴었다. 떼쓰는 것보다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더 먼저 배웠던 터라 내게 타인에게 나를 맞추는 것은 일상이었고 자연스러웠다. 나 다움을 잃어갔지만 생존을 위해서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세상에 보란 듯이 난 내가 원하는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다고 패잔병처럼 방구석에 앉아서 찔찔 짜고 앉아 있을만큼 마음이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내겐 없었으니까.









행복한 기억들 마저 진흙탕으로 변하기 전에 이혼하라


엄마 아빠의 만남과 눈물겨운 사랑 스토리를 알기에 나는 이혼에 찬성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이었고 진심이었을 두 사람의 과거의 기억들 마저 싸움과 미움으로 점점 퇴색되어 가는 것이 나는 안타까웠다. 결국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때 당시에는 진심이었다는 것을 내가 다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이혼에 대해 의논하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스스럼없이 말한다. 한 때 죽도록 사랑하고 좋았던 기억마저 잃고 싶지 않으면 이혼도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10중 8~9는 아이 때문에 이혼을 미루거나 이론을 망설인다. 난 그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매일 싸우는 엄마 아빠 밑에서 불행하게 크는 것보다 한 부모 가정에서도 아이는 더 잘 자랄 수 있다고..."









사랑의 기억은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

                                                        -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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