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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Sep 02. 2023

아이의 정서는 부부의 성적표

우리 엄마 아빠는 안 싸워요.





안 싸우는 부부는 없습니다.
다만, 싸울 장소와 때를 구분하는 것뿐입니다.




부부는 모두 싸운다



초등학생 1, 4학년을 대상으로 정서 행동 검사를 한다.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에 대해서 먼저 온라인으로 검사를 실시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면으로 정서행동 평가 문제를 풀게 된다. 



정서 평가를 하고 온 날 밤 아이와 누워서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 엄마, 오늘 정서 행동 평가 문제에 부모님은 술을 자주 마신다 그런 문제가 나왔어. 근데 아빠는 술을 자주 마시고 엄마는 아예 안 먹잖아. 그래서 나는 어디에 체크할지 몰았어."


이건 무슨 소리인가? 엄마가 술을 안 마시는 것은 맞지만 아빠가 술을 자주 마신다니? 


" 아빠가 언제 술 마셨어? "


" 아빠 저녁에 치킨이랑 피자 그런 거 먹을 때 자주 술 마시잖아."


그렇다. 남편은 종종 맥주 한 캔 정도를 마신다. 


" 아.. 그거. 거기에서 술을 자주 마신다는 아빠가 퇴근 후에 동료들이랑 회식을 하면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고 들어오는 횟수가 많은지 물어보는 거야."


아이에게 대답을 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예전 나의 어릴 적 기억이 났다. 아빠가 늦깎이 대학생이어서 엄마 혼자 경제 활동을 하는데 아빠는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그것도 자기 책가방을 맡기고 같이 동행한 과 동생들 술값까지 내곤 했다. 지금은 책가방을 담보로 누가 술을 주냐고 하겠지만 80년대에는 가능했다. 퇴근한 엄마는 술 취한 아빠의 주사에 시달리고 다음날이 되면 술 집에 외상 한 술 값을 지불하고 아빠의 가방을 찾아왔다. 어인 아이가 보아도 아빠가 참 철이 없고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가 또 술을 먹고 오진 않을까 늘 걱정해야 했다.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에는 조용히 그냥 지나가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방한칸에 부엌 한 칸 있던 단칸방에 피할 곳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엄마와 나는 그 주사를 다 받아 내야 했다. 그 정도면 술을 드신 게 아니라 술이 아빠를 먹은 것이었다.


"엄마, 그리고 또 그런 문제도 나오더라. 엄마 아빠가 자주 싸운다."


"그래서 어디에 표시했어?"


"전혀 그렇지 않다에 표시했어. 엄마랑 아빠는 안 싸우잖아... 근데 시현이는 자기네 엄마 아빠는 매일 싸운다고 말하더라? " 


"................"





아이가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다에 표시해 온 것은 그동안의 우리 부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 세상에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을까? 우리 부부도 예외는 없다. 단지 싸울 장소와 시간 때를 가려서 할 뿐인가. 카톡으로도 싸우고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싸우던지 급하면 집 앞 공원으로 불러낸다. (웃음) 화가 많이 났었고 이해가 안 되다가도 분노 폭발과 마찰을 지연시키고 아이가 없을 때를 기다리면 어느새 화산같이 폭발할 것 같았던 화도 조금 누그러져 있다. 그리고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내뱉지 않고 무슨 말을 할지 많이 정리가 된 상태에서 서로 대화를 하게 된다. 처음엔 우리 부부도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싸움을 보고 자란 나에게는 내 아이한테 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부부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심정이 어떨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 엄마 아빠도 싸워."


" 응? 언제?"


" 호림이 없을 때니 카톡으로 "


" 싸우는 거 나쁜 거라면서? 나한테도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잖아? "


" 모든 싸움이 나쁜 것은 아니야. 서로 비난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쓰는 게 안 좋은 거지. 살다 보면 마음에 맞지 않는 일도 있고 어른들끼리 해야 할 말들이 있거든... 단지 화가 났다고 해서 큰소리로 말한다던지 책임지지도 못할 말까지 막 뱉어 내지 않는다는 말이야... 자, 이제 불 끄고 자자."


아이는 금세 잠이 들었다. 아이가 부모님이 자주 싸우시지 않는다에 체크를 한 것만 해도 아이 정서를 지켜 준 것 같아서 뿌듯했던 밤이었다.





어린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법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 조제프 주버트 -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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