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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산티아고 Oct 28. 2022

잠깐 멈춰서 네 삶을 돌아봐

몸이 줬던 신호

남편과 언쟁 이후 화해는 했지만 나날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순간순간 손가락 사용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을 때마다 어쩔 줄을 몰라 혼자 가슴앓이 하고는 했다. 그런 날은 무턱대고 근처 대도시 재활치료를 해준다는 병원들을 찾아다녔다. 온전치 않은 오른손으로 벌벌 떨면서 운전해 찾아갔지만 입원치료도 몇 주는 기다려야 했고, 외래진료는 1년 가까이 대기를 해야 한다는 답변만 듣고는 눈물바람을 하며 되돌아오고는 했다. 그러고는 온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종일 누워있기만 했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오른쪽 눈이 안검하수로 눈꺼풀을 끌어올리는 근육에 힘이 없어 눈꺼풀이 쳐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의 놀림과 수군거림으로 심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고, 그게 평생 마음의 상처가 되어 지금도 가슴 한편을 억누르고 있다. 지금껏 세 번의 수술을 받았는데 첫 수술을 시골에서 했던지라 안검하수에 대한 장애에 대한 치료 수술이 아니라 쌍꺼풀 성형수술로 되어 있어 제대로 된 안검하수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성인이 되고,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간 서울의 큰 병원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망연자실했었다. 그런 나에게 손가락이 안 움직여 장애를 하나 더 달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지금껏 견뎌왔던 고통을 살아가면서 두 배 세배 더 겪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처받아 웅크리고 있는 어린 영혼을 다시 데려와 원망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희망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과 같았다. 사춘기 시절 나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느꼈었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 순간들이 떠올라 숨이 턱 막혔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였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뇌종양으로 개두술까지 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고 무서웠는데, 거기다 오른손 마비까지 지속된다면 정말 잘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누워만 있었더니 머리가 아프고 더 우울했기에 공원으로 걷기 운동을 다녔다. 심심하면 노래도 듣고, 강의도 들었다.     

그러던 중 들리던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인생에 한 번쯤은 하프타임을 가지고 삶을 뒤돌아 보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 잠깐 멈춰 서서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많은 굴곡들이 있었지만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눈앞에 닥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만 열심히만 살았던 거 같다. 나 또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어디에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니 이 상황이 더 힘들었던 거 같다.     


그래. 잠깐 쉬어가는 거야. 그동안 너무 쉼 없이 달려만 왔으니 잠시 쉬면서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나를 찾아보자. ’이 병은 내 잘못이 아니다. 지금껏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거다.‘라는 삶의 작은 희망 한줄기를 잡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원치는 않았지만 뇌종양이라는 엄청난 삶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터닝포인트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내가 이 뇌종양이라는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야 하느냐에 따라 180도 달라질 것이다. 이 병이 숨 가쁘게 달려온 나에게 준 하프타임이라고 생각하자, 화나고 억울한 심정으로 바라본 병이 어쩌면 다른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정한 나를 찾아 나다운 삶을 살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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