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야 산다
머리에서부터 이어진 피주머니, 소변줄, 항생제 링거 등등 어마 무시하게 여러 개를 달고 일반 병실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하고 온 나를 보고도 남편은 사진을 찍는다고 V를 하란다. 말도 알아듣고, 할 수도 있고, 팔다리도 움직이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나 보다. 오른손은 주삿바늘로 칭칭 동여매 있어서 움직임 여부를 알 수 없었을 테니.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잘 먹고 걷기 운동 많이 해야 회복이 빠르다고 안내해 주시고 가셨다. 움직이지 않는 손에 대해서는 신경외과 다른 선생님이 오셔서 수술로 아직 붓기가 안 빠졌으니 지켜보자고 하셨다. 남편도 긴장한 눈치였지만 뇌부기가 빠지면 좋아진다니 걱정하지 말고 빨리 잘 먹고 걷기 운동이나 잘하자고 나를 다독인다. 점심때부터 죽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오후 늦게 소변줄을 빼고 화장실을 다니느라 몇 걸음씩 남편의 부축을 받고 걷기 시작했다.
일반실로 올라온 다음날부터 남편은 바빠졌다. 수술 부위에 생길지 모를 염증 등의 부작용에 대비해서 암염 식품이라고 알려진 파인애플, 체리, 고구마를 사 왔다.
그 음식들을 조금씩 수시로 먹여주고, 식사시간에도 그걸 먹이고 밥을 줬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밥을 남기는 꼴을 못 봤다. 오른손을 못쓰니 왼손으로 먹는 게 한계가 있어 수술 후 며칠은 남편이 먹여주니 먹기 싫어도 꼼짝없이 입을 벌려야 했다. 어미 새가 잡아온 먹이를 날름날름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기쁘게 먹어줘야 했다. 그래야 남편이 좋아했으니.
식사 후 좀 쉬었다 항생제 등 온갖 약을 매단 행거를 이끌고 남편 손을 꼭 잡고 한걸음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입원한 10층 병동은 101동과 102동이 같은 층에 있는데 한 바퀴를 돌고 나면 200m가 된다. 출발점에 서서 화살표 방향으로 걸을 수 있게 표시를 해 두었다. 10층은 수술 후 걷기를 잘해야 호전이 빠른 병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환자들은 수시로 보호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걷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줄지어 걷고 있는 모습은 흡사 순례길을 걷고 있는 이들처럼 숭고하기까지 했다.
걷다가 너무 힘들면 중간중간 쉬었다 걷기도 했는데 첫날은 걷는 것도 힘들고, 다리에 힘이 없어 넘어질까 걱정도 되었고, 머리가 흔들릴까 봐 걱정도 되었다. 처음엔 5분 걷는 것도 힘이 들어 다시 들어와 한참을 누워 있다 다시 나가곤 했다.
걷기 시간과 횟수가 늘어나고 날이 바뀜에 따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링거주사액들이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해서 거동하기가 수월해졌다. 매여있던 것들이 많이 줄어드니 맘도 편해져서 남편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농담도 하고, 같이 걷기 하는 다른 분들께 눈인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삿바늘을 꽂았던 손등과 팔들은 보기 흉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가늘고 곧지 않았던 혈관들이 터져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시퍼렇게 멍들었고, 주삿바늘을 고정했던 손등이랑 팔들은 강한 소독제로 인해, 흙놀이하고 로션 하나 바르지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까칠하게 피부가 트고 벌어져 소독할 때마다 따가웠고, 각질이 장난 아니게 심해졌다.
주삿바늘 꽂았던 오른손의 상태가 안 좋아 왼쪽 손으로 옮기고 나서는 남편이 오른팔 전체를 마사지해 주기 시작했다. 같은 병실 보호자분이 그렇게 했더니 팔이 빨리 움직이더라는 말을 듣고는 운동을 하면서도 tv를 보면서도, 내가 누워서 쉴 때도 수시로 조몰락 조몰락 주물렀다. 연애와 결혼 생활 통틀어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손을 오래 잡고 있기는 처음인 거 같다.
수술 후 8일째 되던 날 열심히 먹이고, 걷기 운동 시키고, 씻기고 온갖 수발을 다 들어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있게 만들었고 왼손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들었던 남편은 그 해 휴가를 다 썼기에 출근을 위해 내려가고 대신 동생이 왔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일정 조절을 해주셔서 조직 검사 결과를 함께 듣고 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뇌종양이 유착이 많이 되었고, 최근에 많이 커진 거 같아서 수술할 때 좀 힘들었으나 뇌종양은 깨끗이 잘 제거되었다 하셨고, 그림까지 그리면서 제 단계를 설명해 주셨는데 조직 내 일정 면적에 암세포 개수를 따지는데 저는 양성이지만 1단계라고 보기엔 더 많아서 굳이 단계를 구분하자면 1.5기 정도라 말씀하셨다.
마비된 오른손은 점차 좋아질 거라고, 운동신경 쪽이 유착이 심해서 떼다 보면 건드려지기도 해서 제자리 찾아오면 좋아지니 종양 제거가 깨끗이 잘 된 거에 의미를 두고 완치는 없지만 제거가 잘 되었으니 걱정 없이 살라고 하셨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오른손은 좋아질 거라는 답변을 듣고 남편이 집으로 내려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했던 것처럼 잘 먹고, 걷기 운동도 많이 해서 더 건강해져 빨리 퇴원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