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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산티아고 Oct 28. 2022

작은 한마디 말에도 쉽게 무너지고

난 안 괜찮아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오른 손목 아래 마비 증상으로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던 나는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고 엄청난 두려움에 떨었었다. 살아오는 평생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오른손을 써서 밥을 먹을 수도, 글씨를 쓸 수도, 무언가를 잡을 수도 없었다. 하물며 화장실에 가서 옷조차 내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평생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점점 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수술 후 12일 만에 드디어 엄지손가락이 움직였다. 우리 가족, 언니, 동생들에게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열심히 손가락 마사지하고 움직이려 온 신경을 쓰며 연습을 했더니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또 한 손가락이 움직이니 기쁘기도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 싶어 핸드폰 다이어리에 기록을 하고 있었다. 움직이기는 하나 아직 힘이 없어 타이핑이 힘드니 음성 메모로 남기려고 “0월 0일, 가운뎃손가락 살짝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방금 뭐 한 거야?” 남편이 듣고 있다가 웃으며 물었다.

“응. 손가락 움직였다고 일기 써”

“하하하,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거 가지고 일기까지 써? 어차피 다 움직일 건데”     


뒷엣말은 안 들렸다.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오면서 명치끝이 찌릿 아팠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저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거’라고? 어떻게 저렇게 말하지? 본인 몸 아니라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지금 이 순간에 손가락이 움직이는 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애태우며 바라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런 걸까? 내가 움직이지 않은 손가락을 보며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런 건가 보다. 웃고 있으니 오른손 하나쯤 사용 못 해도 된다 생각하고 있는지 아나보다.     

“나는, 나는 지금 내 손가락이 움직이는 게 제일 중요해, 당신한테는 별 볼일 없는 거겠지만” 이미 목구멍까지 차 올라오는 울음을 꾹 참고 벌벌 떨며 말했다.

“아니, 금방 다 움직일 건데 힘들게 그러고 있냐고?”남편이 당황하며 설명을 한다.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가 불편한 손으로 한참만에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롱패딩에, 털 모자, 장갑, 목도리, 마스크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집을 나왔다. 어디 가냐는 남편의 물음에 대답도 안 하고 나왔다.


집 근처 공원을 따라 걸었다. 5분도 못가 힘이 들어 벤치에 앉았다. 참았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추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간신히 인정하며 내 병을 받아들였던 거까지도 억울하고 서러웠다. 정말 엉엉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한들 개의치 않을 거 같았다. 사방천지 나 혼자인 거 같았다. 내 병을 처음 안 순간부터, 수술하고, 퇴원 후 그날까지 통틀어 그렇게 요란스럽게 울어본 게 그때가 처음인 거 같았다. 얼마나 소리 내 울었는지 모르겠다. 얼마간 우니 머리도 아파지고, 추위도 느껴져 걸었다. 또 얼마간 걷다 힘들어 또 벤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또 그렇게 한참을 우니 이제 왜 우는지도 생각이 안 나고 맘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맘이 편해지는 거 같았다. 그동안 켜켜이 쌓아두었던 설움이, 답답함이 많았나 보다. 그렇게 미친 듯 울어 쏟아내니 한결 속이 후련해졌다.     

나도 안다. 남편이 어떤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다 움직일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마라. 그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 거다. 나는 여태껏 움직이지 않는 손에 대해 걱정하는 가족들 눈치를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불안해하지 않은 척, 두려워하지 않은척했었다. 그러나 남편의 그 농담 한마디의 말이 도화선이 되어 터져 버린 것이다. 차마 평생 또 이런 장애를 갖고 살게 될까 봐 두렵다고, 무섭다고 말은 못 했어도 내 이런 애타는 마음은 알아줘야지 농담거리 삼을 일은 아니라고,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대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운동 갔다 왔어?”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묻는다.

“응”

“괜찮아? 나는 자기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니까 그냥 웃자고 한 말인데”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갈까 봐 무서워. 앞으로 그런 식으로 농담하지 마”

“뭐가 평생이야? 교수님이 부기 빠지면 괜찮아진다잖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내가 안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알았어. 미안해. 앞으로는 안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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