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후 첫 손가락이 움직이던 날
휴가가 끝난 남편이 집으로 내려가고, 서울에 사는 동생이 병간호를 해줬다. 동생의 병간호를 받는 게 27년 전 교통사고에 이어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아직 미혼인 여동생은 내가 수술한다고 했을 때부터 많이 놀라고 걱정했던터라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혹시나 내가 불편한 것이 있을까 봐 침대에서 살짝만 움직여도 곧바로 내게 온다. 먹여주고, 걷기 운동 시켜주고, 오른팔, 오른손 마사지며, 목욕도 시켜 주고, 밤에도 깊이 잠을 못 자고 내 곁을 지켰다. 퇴원하는 날 그동안 고마웠던 간호사 선생님께 고마움을 담은 쪽지도 전달하는 이쁜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
남편과 동생의 지극한 돌봄을 받고 크리스마스 날 퇴원할 준비를 했다. 동생이 짐을 싸고, 퇴원 수속도 밟고, 약도 탔다. 간호사 선생님의 퇴원 후 건강관리 등에 대해 이야기도 다 들었다. 수술도 잘 받고, 치료도 잘 받아서 수술 부위 염증이나 문제는 없었고, 잘 먹고 걷기 운동도 많이 해서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수술한 부위의 부기가 빠지려면 몇 달은 걸리니, 부기가 빠지고 제자리를 찾으면 손가락이 움직일 거라고 교수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움직이지 않은 손가락을 보니 이대로 퇴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고, 계속 이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이 너무 컸다.
추운 겨울이고, 아직 내 몸도 건사하기가 힘든데 짐도 너무 많아 기차를 타고 가기는 힘들 거 같다고 형부가 4시간 거리를 운전하여 데려다줬다. 차가 흔들리면 머리도 흔들릴까 봐 조마조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람 많은 휴게소에는 들어갈 수 없어서 졸음쉼터에서 화장실만 잠깐 들렸다. 수술하러 올라갈 때와 수술 후 내려가는 내 모습이 너무 달라 마음이 아팠다.
집에 오니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큰딸도 주말이라 기숙사에서 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우리 네 식구가 한데 모이니 정말 집에 온 것이 실감 나고 이제 살았다 싶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날부터 수시로 좁은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걷기 운동을 했고,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힘을 보내지만 꼼짝하지 않는 손가락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꼭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간 나는 대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의식적으로 운동을 시켰다.
드디어 수술 후 12일 만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움직였다. 남편이 호들갑스럽게 동영상을 찍으며 환호했다. 우리 5남매 단독방에 그 동영상을 올렸더니 언니가 대답한다.
“오메~ 잘했구만”
돌쟁이 아이가 첫걸음을 뗐을 때 받는 칭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이제 첫걸음을 뗀 거라고 생각하자. 수술하고 12일 만에 움직인 거니 잘한 거네. 이제 열심히 운동시켜서 손가락 다 움직이게 하면 되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언니의 그 짧은 한마디 칭찬이 어린아이처럼 들뜨게 했고, 희망을 갖게 했다.
남편은 내 옆에만 앉으면 습관처럼 내 오른손을 가져다 주물럭거린다. 내가 집에 왔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음식도 청소도 다 남편 몫이다. 남편이 출근하면 그 무렵 방학인 아이들이 내 식사까지 다 챙겨주고, 설거지도 알아서들 했다. 나는 열심히 운동해서 손가락 움직이게 하고, 체력을 길러 예전처럼 돌아가면 된다.
이런 가족들의 돌봄과 사랑 덕분에 차츰차츰 한 손가락씩 움직이다 전부 다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오른팔 전체가 힘이 없고, 손가락 끝이 마취가 덜 풀린 것처럼 둔하고, 동상 걸린 손가락처럼 얼얼하고 아프긴 해도 움직일 수 있으니 맘이 한결 놓이는 거 같았다. 그래 할 수 있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