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안 움직여요
어둠 속에서 몸부림쳤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나 목에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허우적거리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눈을 떴다. 입에 뭔가가 물려있다.
전신마취를 위한 기도삽관이었다. 돌이켜 보면 수술 전후 모든 순간들 중 그때가 가장 고통스러웠었다.
아프다고 빼달라고 말을 할 수 없어 온몸을 흔들어댔다. 몸이 묶여있다. 맞다. 몸을 결박할 거라고 동의서에 내가 동의를 했었다.
“가만히 계셔요. 수술한 곳에 무리가 가요. 선생님 오셔야 뺄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봐요” 나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았다. 수술한 곳에 안 좋다고 핀잔만 들었다.
정말 영겁 같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사선생님이 오시고 기도삽관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랜턴을 들고 눈동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말을 알아듣는지, 말을 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목이 너무 아파 쇠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알아들었어요”라고 간신히 대답했다. 팔다리가 움직이는지 들어 보라 하셨고,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손가락을 움직여보라는데 어, 오른손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손목 아래로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순간 너무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첫 진료 때부터 오른쪽 팔, 다리의 후유증이 있을 거라고 말씀은 하셨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후유증이 올 거라 생각을 정말 1도 하지 않았었다. 수술 부위에 염증 생기거나 뇌척수액이 흐르는 경우에 대해 걱정은 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상상도 못해봤던지라 수술 전까지만 해도 잘 움직이던 손이, 그것도 오른손이 안 움직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한참 후에 수술 전 색전술을 해주셨던 신경과 교수님이 오셔서 수술 잘 끝났고 뇌동맥류는 수술할 필요 없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교수님 손이 안 움직여요” 나오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더니 좀 있으면 담당 신경외과 교수님 오신다고 걱정하지 마라하고 가버리셨다.
중환자실은 정말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 나처럼 몸부림치는 사람, 우는소리, 비상 경고음 소리, 의료진들의 다급한 목소리들, 발자국 소리들. 간혹 들리는 코드블루 발송은 심장을 오그라지게 하였다.
수술을 해주셨던 교수님도 오셔서 종양 제거는 깨끗이 잘 되었고, 지금은 수술 부위가 수술 부위가 부어 있어서 그러니 지켜보자고 하셨다. 마취가 덜 깨 잠을 한참 잔거 같아 시간을 보면 10여 분 지났을 뿐이었다. 중환자실 시계는 너무나 더디 가는 거 같았다.
목이 말랐지만 아직 물을 먹으면 안 돼서 간호사 선생님이 화장지에 물을 묻혀 입술을 적셔주셨고, 가래가 계속 나왔지만 오른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이 안 움직이니 가래 하나 제대로 뱉을 수 없는 현실이 정말 암담했다. 지루하고 무서운 중환자실을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정신이 돌아오고 벽에 있는 시계를 처음 봤을 때가 새벽 1시쯤이었던 거 같은데, 몇 번을 자고, 수술했던 교수님 두 분도 다녀가시고, 여러 번 난리가 나고 했어도 여전히 시계는 천천히 움직였다. 온통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서 깊은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어느덧 아침이 오고 있었다. 중환자실 선생님들이 입원실과 연락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환자 보호자들이 왔는지 확인하고, 이동시켜줄 분들한테도 연락하는 소리에 나의 온 신경이 쏠렸다. 남편이 빨리 와 있기를, 내가 1번으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그날 그곳을 탈출한 첫 번째는 내가 아니었다. 아무튼 그곳을 빠져나와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남편을 처음 보고 한 말이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빨리 와야지”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 입술 닦이고, 물 먹이고, 가래 받아내는 천사 같은 그분들이 계시는 그곳이 사람 사는 곳은 못 되는 거 마냥 벗어나고 싶었다. 아마도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이 그곳을 벗어나면 움직일 거 같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