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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콩 Dec 07. 2022

9. 첫째지만 막내아들 젤리


젤리는 공고가 올라온 당시에 문의가 많이 왔다고 했다. 품종견에 어린 강아지가 올라오면 입양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한다. 물론 문의가 입양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다고 한다. 유기견이니까, 유기견이라서.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 없는 일임에도 작은 편견 때문에 입양 결심을 포기하고는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젤리가 아니면 안 됐다. 분홍빛 혓바닥을 보이면서 웃고 있는데, 그 모습에 홀라당 반해버린 거다. 내장칩이나 외장칩 없이 유기견이 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입양이 가능해진다. 첫눈에 반해버린 우리는 젤리를 데려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보호소라는 이름을 단 동물병원으로 갔다.

아직 문도 안 열어서 추운 밖에서 기다려야 했으며 직원은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앞에 있어도 봐주지를 않아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우리는 전화를 걸었고, 보호소는 병원이 아닌 같은 라인에 있는 다른 건물이었다. 보호소라고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안에는 호텔링 하는 강아지들과 다 큰 고양이들이 창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엔 펫샵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양이가 많았다. 내부엔 강아지나 고양이 용품이 정말 많았다. 생각했던 보호소의 이미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입양 문의한 사람이라고 하자 그들은 공고번호와 사진을 본 후 안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말티즈라고 적힌 공고로 인해 작을 거라고 생각한 건 우리의 큰 착각이었다. 복슬복슬한 털이 아주 많이 자란 우리의 새 가족은 토토보다 컸다. 정말 컸다. 젤리가 나왔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장한 건지 덜덜 떨며 안기던 그때를 생각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야 아무렴 어떻냐는 생각이 들었다. 복슬복슬한 털과 귀여운 혓바닥에 홀린 우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왕 크니까 왕왕 귀엽다!"

안에 있는 호텔견들은 푹신한 방석에 누워 짖기도 하고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간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건물 한쪽 방에 있는 <보호소>란 공간에는 철창으로 된 시설이 있었다. 거기엔 강아지뿐만 아니라 유기된 염소도 있었다. 신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보호소에 들어온 지 보름이란 시간이 흐르는 시간 동안 젤리는 뜬장에서 추운 겨울을 버텼다는 이야기가 된다.

덜덜 떠는 젤리를 데리고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절차가 있었다. 입양 계약서를 써야 하고, 입양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어야 했다.

입양이 끝나고 처음 갔던 동물병원에 칩을 등록하러 가는 길이 무서운지 품에 폭 안기는 젤리를 보며 우리는 2차로 반했다. 토토와는 또 다른 귀여움. 어쩌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몰랐다.

집에 온 젤리는 뭐가 신나는지 방안을 우다다 달리다가 기존에 우리가 이용하던 병원으로 갔다. 염소 냄새가 나는 털을 박박 밀었으며, 간단한 기본 검진까지 끝냈다.

이게 유기견을 입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본격적인 건강검진이 남아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젤리는 포인핸드 공고를 보고 입양한 거라 포인핸드와 연계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해서 병원비 지원이 50프로 가능했으며, 보호소가 있는 해당 구청에서 유기견 입양 비용 20만 원을 지원받았다.
(유기견 입양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원해주는 곳이 있으니 꼭 알아보고 하기를!)

집에 잘 적응하는 것 같던 젤리는 우리 자매가 화장실에 가기만 해도 하울링 하면서 우리를 부르고, 분리불안으로 인해 외출도 힘들었다. 어딜 가든 졸졸졸. 그게 아니면 젤리 자리라고 만들어놓은 곳에서 잠만 잤다. 정말 며칠이나 잠만 잤다.

유기견을 입양하겠다고 다짐할 때 예상한 것보다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했다. 그래도 그동안 본 수많은 영상과 글들이 도움이 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입양하려는 사람에게는 후기를 많이 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졸졸 쫓아다니던 젤리는, 겁이 많던 젤리는 집에 온 지 1000일이 지난 지금은 완전 적응했다. 이젠 가족이 움직여도 누워서 힐끔힐끔 보기만 하고 잘 일어나지도 않는다. 엄마를 닮아서 귀차니즘이 심한 걸까. 간식 줄 때나 짖을 때는 아주 벌떡벌떡 잘도 일어난다. 괘씸한 놈.

20년 1월. 정확한 나이를 몰라 17년 1월생이 된 젤리는 우리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잘 지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막내로, 사랑둥이로 잘 지내고 있었지만 이건 전부 우리 집에 까만 그놈이 나타나기 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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