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바람을 쐬고 싶으면 잠깐 나가 산책을 하고, 몸이 쉬고 싶으면 잠깐 쉬어주면 되는 거다. 배가 고플때는 먹으면 되고, 배부르면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몸의 소리조차 못 들을 정도로 나는 무능해져 있었다.
새벽 4시 20분.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했다. 돈명상을 했는데, 가이드에 따라 돈에 대한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자꾸만 유아기때, '내가 잘 먹지 않는다고, 한 숟가락씩 늘 남긴다며 인상 쓰며 짜증내던 '엄마'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왜 안 먹냐!"라며, 53년 생 이하정의 짜증과 땍땍거리며 소리 질러대는 그 음성과 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기억이 났다.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밥이 한 숟가락정도 남은 상태에서 배가 몹시 부르곤 했는데, 억지로 그 한 숟가락을 먹는 것으로 학습이 되어 있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현재 임신 16주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약간의 입덧이 있다. 입덧이라는 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구토가 아니라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다. 몸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배부를 때, 애매하게 음식을 남기는 것이 못 마땅해 그냥 먹으면 어김없이 체한 것 같은 느낌이 한 동안 지속된다.
몸에서는 '그만 먹어라'며 계속 신호를 주는데, 성인이 된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어릴 때 밥 한 숟가락 남긴것으로 나를 구박하던 양육자의 모습이 그대로 학습되어 있다.
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몸은 또 다른 신호를 보낸다. 자가면역질환, 루프스 증상인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거나 무릎 관절이 아픈 것 같은 증상이다. 이런 증상들이 칼슘이나 기타 영양소들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열심히 칼슘제를 챙겨먹어봤지만 소식했을 때 보다 효과는 덜하다. 오히려 소식을 하면 손가락도 잘 펴진다. 많이 먹고 소화가 안되면, 몸에서 필요한 영양소가 흡수가 안되고, 오히려 몸에 무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내면, 어린 아이의 상처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그 아이는 그 유아기 때부터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불쌍하고 안타까울 지경이다.
나는 그 밥 한 숟가락 만도 못하는 인간이었는지 53년생 이하정이 소리소리 지르며 먹으라고 윽박지르곤 했다. 어쩔 수 없이 기가 죽어 겨우 억지로 먹었던 것도 같다.
밥 한 숟가락보다 못하다는 낮은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었다. 대학을 갈 때나 취업을 할 때도 늘 '날 받아주는데를 가겠다.'라며 무기력한 상태였다. 내 특성과 성향을 고려한 긍정적 자아감이나 건강한 자존감 따위는 없었다.
이 새벽, 명상을 하며 유아시절 고통 받던 아이를 만나주고, '힘들었겠다'알아주고, 그 당시 53년생 이하정의 양육방식대로 학습된 성인의 내가 여전히 내면의 아이를 구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더 어긋나지 않고, 잘 버티고 살아온 아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