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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Oct 14. 2023

나의 식사 장애의 시작

나의 자가면역질환 치유기 #7

'몸의 건강을 지킨다'라는 것이
 사실 별게 없다.
몸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몸이 바람을 쐬고 싶으면 잠깐 나가 산책을 하고, 몸이 쉬고 싶으면 잠깐 쉬어주면 되는 거다. 배가 고플때는 먹으면 되고, 배부르면 숟가락을 내려놓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내 몸의 소리조차 못 들을 정도로 나는 무능해져 있었다.


새벽 4시 20분.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했다. 돈명상을 했는데, 가이드에 따라 돈에 대한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자꾸만 유아기때, '내가 잘 먹지 않는다고, 한 숟가락씩 늘 남긴다며 인상 쓰며 짜증내던 '엄마'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왜 안 먹냐!"라며, 53년 생 이하정의 짜증과 땍땍거리며 소리 질러대는 음성과 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기억이 났다.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밥이 한 숟가락정도 남 상태에서 배가 몹시 부르곤 했는데, 억지로 그 한 숟가락을 먹는 것으로 학습되어 있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현재 임신 16주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여전히 약간의 입덧이 있다. 입덧이라는 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구토가 아니라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이다. 몸이 예민해져서 그런지 배부를 때, 애매하게 음식을 남기는 것이 못 마땅해 그냥 먹으면 어김없이 체한 것 같은 느낌이 한 동안 지속된다.

몸에서는 '그만 먹어라'며 계속 신호를 주는데, 성인이 된 나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어릴 때 밥 한 숟가락 남긴것으로 나를 구박하던 양육자의 모습이 그대로 학습되어 있다.


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어김없이 몸은 또 다른 신호를 보낸다. 자가면역질환, 루프스 증상인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거나 무릎 관절이 아픈 것 같은 증상이다. 이런 증상들이 칼슘이나 기타 영양소들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열심히 칼슘제를 챙겨먹어봤지만 소식했을 때 보다 효과는 덜하다. 오히려 소식을 하면 손가락도 잘 펴진다. 많이 먹고 소화가 안되면, 몸에서 필요한 영양소가 흡수가 안되고, 오히려 몸에 무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내면, 어린 아이의 상처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아이는 그 유아기 때부터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불쌍하고 안타까울 지경이다.


나는 그 밥 한 숟가락 만도 못하는 인간이었는지 53년생 이하정이 소리소리 지르며 먹으라고 윽박지르곤 했다. 어쩔 수 없이 기가 죽어 겨우 억지로 먹었던 것도 같다.


밥 한 숟가락보다 못하다는 낮은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었다. 대학을 갈 때나 취업을 할 때도 늘 '날 받아주는데를 가겠다.'라며 무기력한 상태였다. 내 특성과 성향을 고려한 긍정적 자아감이나 건강한 자존감 따위는 없었다.


이 새벽, 명상을 하며 유아시절 고통 받던 아이를 만나주고, '힘들었겠다'알아주고, 그 당시 53년생 이하정의 양육방식대로 학습된 성인의 내가 여전히 내면의 아이를 구박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더 어긋나지 않고, 잘 버티고 살아온 아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전 19화 아이에게는 엄마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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