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사는 힘으로 이어지지 않아 버거울 때 나는,
'살아 있는 느낌'이 빠져나간, '연명하는 나'와 직면했다.
그 시간들은 고통이었다.
고통.은 내 시야에 장막을 치고 내 사고에 철문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나의 지적 호기심이 출동했고
그 자극적 호기심만이 내 삶의 전부인 양 나는 책을 파고 들었다.
올봄, 너른 마당을 자기만의 환한 빛으로 미친존재감을 뽐냈던 작약.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 그리고 지금 겨울까지
작약은 인생에서 최고로 밉고 못난 자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지금 이 시간은 이렇게 못나야 할 이유있는 시간'임을 온몸으로 인정한 듯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아니, 작약은 아무 의식조차 없겠지.
의식마저 거둬진 그 자리에 '의지'만이 있겠지.
그냥 이 삶이 자기 삶이니까.
그냥 이 모습도 자기 모습이니까.
그냥 이 계절엔 이 모습이어야 하니까.
그냥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노랑품은 분홍과 하양을 뿜어낼 것을 믿으니까.
지금 마당의 작약은
가장 최악의 모습으로 생을 연명중이다.
화려에서 멀어져 퇴락을,
향기조차 잃고서 쇠락을,
생기마저 빼앗긴 황폐를,
생의 잔금을 치르며 죽음과 거래라도 하는 것일까.
피어나는 생명에서 땅속으로 녹아내리는 생명으로의 교환.
팔랑이던 생명에서 괴롭고 불안한 생명으로의 교환.
자라나던 생명에서 머물고 고인 생명으로의 교환.
절정에서 나락으로의 교환...
지금 작약은,
메마르고 휘어지고 넘어지며 땅속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나의 생도 죽음과의 교환을 위해 남은 생을 조용히 재건중이다.
그리고,
나의 죽음도 죽음 뒤 또 다른 생과 교환되겠지.
지난 시간,
온갖 적들에 대항하면서도
순수했던 영혼을 자본과 교환하는 어리석은 나였지만,
그 지나온 시간의 뚜껑을 떨리는 손으로 열며...
고착된 인식의 자아를 심장을 멈추고 두드리며...
잡고 있었는지, 잡혀 있었는지도 몰랐던 고착과 고정들을 손에서, 어깨에서, 마음에서 내려놓으며
난 여기 시골에서 다시,
순수성을 되돌려달라 앞으로의 시간과 거래중이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에 '너는 누구냐?'고 물어주는 고독한 존재와,
주저없이 오르던 욕구는 '어디로 가느냐?'며 제어하는 강인한 절제와,
벗어나려 추구했던 현실은 '무엇을 위해 사느냐?'며 붙잡는 명철한 이상과
나는 숨죽인 은밀함으로 더디게, 그리고 조용히 교환을 이어간다.
짙은 분홍에 더 짙은 노랑.
왜 사람들은 작약에게 '품위'와 '부귀'의 상징을 부여했을까.
누구에게서 부여받은지는 몰라도
스스로가 시인한 듯
작약은 꽤, 썩, 아주 그럴싸하게 태(太 / 態)를 갖추었다.
신기했다.
같은 뿌리에서 다른 모양과 색을 뿜어냈던 작역은 싹이 돋을 때부터 이미 달랐다.
뻘건 송곳이 땅을 뚫고 올라와 독초인 줄만 알았는데
서서히 줄기로 변하더니
이내 구슬보다 더 단단하고 딱딱한 동그란 꽃봉오리가
한참을... 아주 한참을 저리 개미들의 놀이터가 되어주더니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폈다.
아주 활~~~짝!
하양, 분홍, 홑겹, 겹겹.
눈으로 보기에 2개의 뿌리에서 4종류의 꽃이 탄생했다.
그리고,
겨우 1주일,
겨우 1주일.
겨우 1주일.
화려한 만개의 시간은 짧았다.
짧아서,
귀했다.
짧게 화려했지만
자신은 결코 순간의 찬란함에 머무는 존재는 아니라며,
자신의 부유한 아름다움을 요란하게 퍼뜨리지 않고
고요하고 깊게...
그리고 힘있고 고풍스럽게 자취를 삼켰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점점...
낡아지고 못나지는 시간들을 버티고 있다.
가이아(주)의 품에서...
가이아의 품이라면
최고의 미운 자신도 품어줄 것이라 믿으며...
이 초라한 모습조차 '품위'와 '부귀'의 상징이기에 겪어내야 할 필연의 시간이라며...
땅속으로 녹아내리는 자신마저도 당당히 뿌리의 양분으로 응축시키는 작약처럼,
나는 내 안의 밉지만 쓰리지만 약하지만
나를, 내 생을 지켜내야 하리라.
생은 영혼을,
영혼은 생을,
그 둘의 실체인 나를, 지금을 지켜내야 하리라.
정작 지켜내야 할 것은 외양이 아니다.
내면에 고요하게 침잠중인,
외면했던 나 자신의 생.
그 생을 나는 보듬고 살아내야 하리라.
못난 시간이 길었던들 어떠리.
아픈 시간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인들 또 어떠리.
여전히 못나고 아프지만 그 시간을
자기만의 '찬란한 시기'로 승화시키며
'낡음'을 '새로움'과 교환하고,
'과거'를 '현재'로써 '미래'와 교환하고
'순간의 찬란함'을 '지속된 영원성'으로 교환하는 교대가 이어진다면,
뭐 그리 대수는 아니지만 분명 언젠가 다가올,
존재에서 존재하지 않음으로의 교환에 서로 응당한 거래였음을,
이는 소멸도, 비상도 아닌, 그저 한 걸음의 보행일 뿐이었음을
그리 알아가지 않을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게 무엇을 건네고 떠나갔는가.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무엇을 건네고 사라질 것인가.
중년의 나는 젊은 내게 무엇을 넘겨받았고 노년의 내게 무엇을 건네야 할 것인가.
짧지만 잠시의 머뭄이 아닌, 인류 역사 위에 '하나의 나'라는 점이어야겠다.
짧지만 순간의 빛이 아닌, 내 인생 역사 위에 '오늘'이라는 점을 찍어야겠다.
짧지만 찰나의 허무가 아닌, 내 생을 밀어올릴 '단단한 지금'의 점은 마땅히 찍혀야겠다.
외양이 무너지고 녹아내리는 이 시간은
상실된 자아의 소멸이 아니라
응축된 자아의 소생이어야겠다...
주> 가이아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지배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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