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음 시즌 [엄마의 유산] 집필을 위한 브레인스토밍이 한창이다.
엄마 작가들은 자신이 남길 정신의 본질을 찾아 각자의 삶을 꺼내어 놓는다.
오늘은 '똥고집'에 대해 토론했다.
토론전 글을 접한 새벽 5시.
나는 나의 '똥고집',
엄마가 늘 '한고집', '저 놈의 고집', '황소고집'이라 말씀하시던
나의 '고집불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의 고집에게 물었다.
이 짧은 질문에 내 안의 고집은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불완전한 나를 기다리는 '집요함'이라고,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존재의 잉태'라고,
판단과 합의의 속도에 대한 '저항'이라고,
효율과 합리, 타자의 시선으로는 찾을 수 없는 '의미'라고,
나조차도 설득되지 않지만
나만의 시간을 두텁게 만들고 있는
어떤 '태도'라고.
그렇게 고집은,
내 안에서 울리는 나만의 리듬을 따라
나를 바닥까지 끌어 내린다.
감각을 먼저 믿으려는
나조차도 불편한 지속이지만
그제야 나는
나의 사유가 바닥에 닿았음을 느낀다.
그렇다.
나는 최근 몇주 사유의 바닥을 긁고 있다.
긁어대면 하나라도 더 찾아질까 싶어서,
긁어대면 긁힌 자국이라도 남겨질까 싶어서.
자국이 생기기 전,
긁어낸 질뇨로 언어가 새로이 조합된다.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적당한 어휘는 생겨난다.
이로써
남들도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나만의 글이 탄생될 기미를 느낀다.
기미에 기뻐 나는 더 긁어댄다.
바닥인줄 알았는데 또 구멍이 뚫려 있음을 발견한다.
저 아래,
더 깊은 바닥이 있다.
집에서 걸어 5분, 마을 입구엔 흑천이 흐른다.
요며칠 날이 영상으로 올라와서인지
꽝꽝 얼었던 강이 스르르 녹아있다.
하지만,
얼음 위에 노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꽝꽝 언 얼음을 밟고 들어가
살짝 돌로 두드리고 깨본다.
단단하지만
깨진다.
그 속엔 물이 고여 있다.
다행이다.
맑고, 수포도 있다.
물이 얼음에 갇히며 산소와 질소가 빠져나가지 못해 생긴 수포.
물고기들에겐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소중한 구슬이자 여전히 이 물은 건강하다는 증거다.
수포가 가득한 물 속을 들여다보니
그 속은 또 얼음이다.
바닥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바닥은 아래에 또 있다.
내 사유하는 정신도 얼음 닮았다.
긁어 깨진 정신 속에도 수포가 있겠지.
냉정한 벽 앞에서 그래도 숨이 되어줄 수포가
나의 사(思)에도 유(流)하겠지.
이 추운 겨울,
얼음아래 흐르는 물이 생명의 물이듯
나의 차가운 이성 속에도 정신의 숨을 담은 사유의 물이 흐르길 바란다.
얼음 저 바닥 물길이 멈추지 않는다면 봄이면 온전히 흐를 것이다.
그 때까지 나는,
지금의 사유를 맑게, 지속되어도 괜찮은 사고의 길로 지켜가면 되겠지.
의지가 아니라 의미로,
의미가 새겨지면 감미로,
감미가 용해되면 흥미로,
흠미가 결이 되면
찬미가 되겠지.
냉기로 가득찬 세상에서 차가운 바닥에 맞닿은 지금,
의지가 찬미가 되는 어느 날,
사유의 바닥을 긁어대는
이 고집이 함유한 이유는 끝내 드러나고야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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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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