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두번째 겨울을 수월하게 보내는 내가 기특하다.
읽은 것과 시골에서 삶이
커다란 배움으로 이어져 글로 빠져나가는
하나의 고리안에서
시골의 낯선 생활이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잡은 지금,
내 입에서 사라진 소리는 '재미없다.'이며
내 입에서 연신 터지는 소리는 '너무 재밌다'다.
이제 2번째 맞는 겨울,
나는 또 기적같은 재미에 빠져 있다.
요며칠 나는 녀석이 사는 곳을 매일 찾는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고라니가 결국 내 눈앞에서 놀았듯 멧돼지가 바로 내 앞에서 목욕을 했듯 이 녀석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내게 낯선 것은 상대에게도 낯설다. 익숙해지면 편안해진다. 녀석이 날 찾아올리 만무하니 내가 찾아갈 수밖에. 매일 녀석을 만나러 간다면 녀석은 날 경계대상이 아닌 익숙한 생명체로 여길 것이고 그 때 자연스러운 녀석의 생활권에 난 들어가게 된다.
불과 10여일 전, 난 알았다.
여기 수달이 산다는 사실을.
동물원이나 브라운관에서만 보던 녀석이
우리집에서 걸어 10분,
여기 산다고?
너무 놀라워서 믿지 않았지만 마을 어르신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툭 하고 뱉으신 말씀을 굳이 거짓으로 여길 필요는 없었다. 반딧불이 보호구역인만큼 여긴 청정하고 작년 여름 물놀이하며 건넨 딸내미의 말마따나 '검색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니 사람들의 왕래도 거의 없다.
근거는 충분했다.
새벽 4시경부터 책상에 붙은 몸은 점심을 거하게 먹은 1시 이후 잠깐 책상을 떠난다.
그 때다. 운동도 할겸 늘 빠르게 걷는 마을한바퀴는 이제 녀석의 거주지를 탐색하는 방향으로 바꼈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소풍가는 아이마냥 난 들떠서 집을 나선다.
새벽부터 정신에 투입된 배움들도
이렇게 몸을 움직이면
섞이고 엮여서 자동적인 연동고리가 생겨나는 재미도 만끽할 겸
팔다리도 움직일 겸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녀석의 존재도 기대하고
녀석과 마주칠 찰나도 당길겸
요즘 매일 녀석을 찾아 나선다.
다행히도 강은 얼어있고 그 위로 쌓인 눈때문에 발자국이 선명하다.
멀리서 그저 오리나 새의 것으로 여긴 발자국부터 보기 위해 난 얼음 가까이 다가간다.
누구인지,
언제 지나갔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했는지.
새발자국 옆에, 방금 지나간 듯 선명한 발자국.
개도, 고양이도, 고라니도, 멧돼지도 분명 아니다.
처음 본 국화빵 모양의 발자국.
걸음은 물이 얼지 않고 흐르는 곳으로 향한다.
물고기가 걸어서 물로 들어갈 리 없으니
물속에서, 땅위에서도 사는 녀석이어야 한다.
네**에서 얼른 검색을 해보니
수달이 거의 확실하다.
선명한 5개의 발가락.
발자국 크기로도 수달일 확률은 아주 높다.
하지만,
이렇게 살살 노는 시간은 2시간까지만 내게 허용한다.
주객이 바뀌면 안되니까.
여전히 미숙한,
글훈련에 집중해야 할 시기니까.
곰이 겨울잠을 자며 새끼를 탄생시켜 봄을 맞이하듯
나 역시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잠을 더 자야만
새로운 봄, 새로운 나, 새로운 글을 창조해 내니까.
서둘러 다시 책상앞에 앉아 미처 끝내지 못한 글에 다시 몰입하면,
나는 감사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재미난 놀이터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누리는 감사.
그리고 이렇게 살기 위해
그간 치열하게 싸워온, 쌓아온
시간과 조건들에 감사...
다음 날, 비슷한 시간, 난 다시 녀석에게 간다.
이번엔 더 하류쪽으로 내려간다.
오호! 물이 훨씬 깊은 곳 발견.
그 주변으로 녀석들의 동태가 어지럽게 그려져 있다.
한두녀석이 아니다.
게다가 갈대숲이 우거져 있고
그 옆으로 녀셕들이 은신할만한 숨을 공간도 충분하다.
녀석들은 바위 위에 응아를 한다고 하니
바위 위를 살펴본다.
오호!!! 이것이다!
응아가 있고 생선가시들이 섞여 있다.
큰 덩어리도, 작은 덩어리도 곳곳에 많은 걸 보니
아가수달도 있는 모양이다.
정해졌다.
매일 이 곳을 찾으면 된다.
녀석이 나의 존재를 그저 물 속의 물고기마냥, 그저 지나가는 바람마냥, 그저 흩뿌리는 하얀 눈마냥 여기도록 공기처럼 녀석의 주위를 배회하면 된다.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할 때까지. 그렇게 녀석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난 존재하면 된다.
내 눈앞에 보고 싶은 맘이 클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값지다.
잦아가는 발걸음이 잦을수록 볼 수 있는 찰나는 가까워진다.
그 때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각자의 삶을 그냥 드러내면 그만인 것이다.
서로가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상대를 수용하는 인식조차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난 동물원에 사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1년이 조금 넘은 시간,
시골에, 자연에, 식물에, 곤충과 동물들에 푹 빠져 지내며 이 모든 일상은 나의 글이 되었고
글의 소재가 되어준 이들에게 더 큰 감사가 느껴져 더 소중해졌고
그리고 오늘, 이 시간.
난 이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여기 거대한 자연이라는 동물원에 함께 거주하는 동등한 하나의 생명일 뿐임을 자각한다.
내일, 녀석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나든 만나지 못하든 상관없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자연이 기록하고 있을테니까...
수달을 기다리듯,
글도 나를 기다린다.
자연 속에서 덤벙거리는 나의 발걸음은 나의 글이 되고
나의 글은 나의 삶이,
삶은 다시 나를 만들어 간다.
행적과 글, 삶, 나가 하나로 연결되는 고리.
나는 이 하나의 고리 속을 도는 재미에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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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영혼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