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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17. 2022

알고자 하는데 알지 못한다면

'지식'과 '이해'에 대한 소고

알고자 하는 데 알지 못한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거나

길을 찾지 못한 것.


길을 찾지 못하면 차라리 무지를 유지하면서 계속 찾을 때까지 가면 되겠지만

잘못된 길을 간다면 이는 지식의 오류나 함정에 빠져 오히려 가지 않는 것만 못한 꼴이다.


게다가 쓸데없는 곳을 헤매느라 정신활동을 다 소모해버린 채 쓸데없는 행동으로 기운을 다 써버리고 결국 제대로된 지식 앞에 자신만의 오류로 반박하는, 민망한 자신을 발견할 지 모를 일이다.

이는 오랜 기간 깁스를 하고 있던 다리는 깁스를 풀어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또 다른 운동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의 고착은 다리깁스보다 더 무섭게 내 정신과 육체를 속박하니까.



지식에 대해 거론하면서 데카르트의 규칙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데카르트는 그의 제1규칙에서 아주 명확하게 규정했다.

'많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학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중략) 오히려 지식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희망 못지않게 지식이 감소될 수 있다는 염려도 크기 때문이다.(중략)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만을 신뢰해야 한다.'


데카르트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의심하라!'에 꽂혀서

모든 것에 의심하는 것이 무언가를 탐구하기 위한 위대한 정신인 듯 여기며 

의심, 즉, 호기심에 대해 고뇌하는 자신을 찬양할 지 모르겠지만

그는 '의심이 안되는 것만 신뢰'하라는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다.

의심해보고!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으면 그냥 믿으라는 거다!

그리고 그것에는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는거다!

의심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의심하고 호기심을 내세우며 탐구하는 정신은 

오히려 기존에 지니고 있는 지식마저도 오염시키는 위험한 짓이라는 거다!


우리가 지식으로 습득해야 할 것은 뭘까?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탐구해야 하며

더이상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학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중심을 알고 여러 변수들의 관계들을 파악해 본질의 공식을 찾아내는 정신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언어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나와 너의 혀가 전해주는 언어 속에는 다양한 의미의 속내가 담겨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과학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미립자와 원자로부터 생성소멸하며 진화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법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세상에 보이지 않지만 거대하게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대법(大法)의 원리를 의심하지 말 것이며

예체능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육체와 정신, 영혼의 협음은 세상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조화로워야 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생물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이 땅의 조화를 위해 탄생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경제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내가 사는 체제에서 1원에는 소중한 가치와 분배되어야 할 누군가의 몫이 존재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정치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이를 행하는 자들에겐 정의와 소신, 공공의 선이 기준이어야 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지질과 천문학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세상 모든 대자연 속에 내가 있고 그들에게 내가, 내가 그들에게, 전부를 허락해야 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인간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개개인은 모두 가치로운 존재로서 개개인이 사고해야할 덕과 윤리의 기본이 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우주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에너지의 순환과 그 과정 속 진공에 나도 무언가로 우주의 한부분을 채워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거론한

수학부터 우주까지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어떤 하나의 것이 다른 개체와 개별적 연결, 나아가 전체로 연결될 수 있음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지식'을 '이해'수준으로 확장시켜 지식에 신뢰의 의복을 입히는 것이다.



삼각형, 구구단, 원소기호, 국민체조, 영양소와 같은 

가장 단순한. 즉,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신뢰로운 이 기초, 기본, 근원들은

내가 심취해있는 개별적, 부분적인 탐구가 

인문학과 철학과 인간중심의 모든 탐구로 연계되어 삶의 진리를 이해하는 시작이 된다.

계단을 밟지 않고 꼭대기로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지식은 그래서 기초부터 단계별로 차근차근 시간과 함께 쌓여질 때

정작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절대근원지식을 발견하게 되고 이는 신뢰할 더 큰 지식'으로 나아갈 

또 다른 시작이 된다.


그리하여,

지식습득의 활동

이 쪽에서 저기 멀리까지를 연쇄적으로 연결짓고 

그 연결된 전체에 부피를 채우고

채워진 부피를 밀도있게 압축시켜

또 다른 지식진화를 위한 시작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활동이어야 우리는 지식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해한 것이 발현될 때 지식을 '득'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하고 들여다봐야 하는 지식은 지독하게 탐구해보고

탐구대상의 근원을 발견하면, 

즉, 의심할 필요가 없는 지식까지 다달으면

거기서 더 이상 탐구를 멈추는 용기를 내보자.


가령, 새벽독서모임에서 한 회원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우주만물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내가...블라블라'

나는 '멈추세요.' 했다. 우주에 자연에 세상에 모든 만물 가운데 내가 존재하니 어떤 인과에 의해서든 연계되어 있고 수많은 철학과 물리학 등의 학문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진리로서 언급하니 '내가 우주만물과 연계되어 있구나.'는 더 이상 파헤칠 수 없는 근원지식이다. 그러니, 그냥 수용해야지, 내가 왜 연결되어 있는지 (근원에 대해) 의심하지 말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를 따지고 들지 말라 했다. 그 다음 지식은 '내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무엇'을 찾는 방향이나 '연결되어 있는 나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같은 새로운 지식으로 방향을 만들라 했다.


의심이 많으면 호기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으면 지식의 오류도 많다.

오류를 거둬내면 진실이 보이겠지만

어리석은 내 정신은 오류를 오류로 보지 못하고

설사 봤다 하더라도 진실을 보기 전에 오류를 거둬내는 데에 기운을 다 써버리기도 하며

거기까지 갔는데도

정작 거둬낸 자리에 무얼 채울지를 몰라 끙끙대는 꼴을 자주 보인다.


이제, 내 정신이 좀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정신의 눈이 의심이 필요한 곳을 제대로 조준하고

정신의 힘은 조준된 그 곳의 깊은 탐구를 위해 육체를 인내시키고

정신의 활동은 조준한 그 곳의 지식들을 제대로된 순서로 배열시켜야 하며

정신의 추구는 배열되고 정돈된 탐구의 대상이 나의 사고와 사상체계를 구축하여 유용한 쓰임이 되게 하는 그 지점에 있어야 하겠다.



데카르트, 방법서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1997, 이현복역,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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