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담단상 5
거두자.
거두면 된다.
거둬야만 한다.
안개를 거둬야 길이 보이고
구름을 거둬야 하늘이 보인다.
덧입혀진 색을 거둬야 하얗게 보이고
그 하얀 것
마저 거둬야 본색이 보인다.
말을 거둬야 뜻이 보이고
그 보이는 뜻
마저 거둬야 진심이 보인다.
표정을 거둬야 얼굴이 보이고
그 보이는 얼굴
마저 거둬야 사람이 보인다.
그렇게
너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거둬내야
네가 보이고
너 역시 나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거둬내야
내가 보이겠지.
거짓을 거둬야 진실이 드러나고
혼탁을 거둬야 맑은 정신이 드러나며
그릇됨을 거둬야 참됨이 드러난다.
생각을 거둬야 믿음이 느껴지고
표상을 거둬야 의지가 나타나고
의도를 거둬야 의미가 전해지고
앎을 거둬야 삶의 본성이 숨을 쉬며
나를 거둬야 참된 나를 발견하겠지.
나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로지 나를 변화시킴으로서
찾는 그것이
내게로 드러나게 할 뿐.
신심명(信心銘)의 가르침따라
삶이 알려준 원리, 이치에 따라
'내 정신과 마음에 깃든 망령'을 거둬야
찾고 구하는
바로 그 것이 드러난다.
내게 덧입혀진,
내 앞을 가로막은 그것을 거두면
정작 보고 싶던
이면에 감춰졌던
이내 봐야(만)할 그것의 정체를 보게 되겠지.
보이는 것을 거둘 때 정작
보고자 했던 진면목(眞面目)을 알게 되겠지.
이미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의
본양(本樣)과 본성(本性), 본의(本意)를 지니고 있으니
가리고 막고 숨겨진 모든 것부터 거둬내자
그러면
본연의 그 것이 내 앞에 드러나겠지.
거두자.
거두면 된다.
거둬야만 한다.
그것이
진짜이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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