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것과 물컹한 것
요즘 같은 가을 햇살엔 무엇이라도 말려야 할 것 같다. 햇빛에 이불을 말리면 나는 고유한 햇볕 냄새와 구수한 현미밥 냄새, 물기 머금은 숲 냄새를 좋아한다. 예전에 LA에 살 때 햇살이 너무 좋아서 무 말랭이를 만들어보겠다고 시도하다 곰팡이만 키운 적이 있다. 비슷한 감 말랭이는 단 맛이 강해 햇빛의 맛이 드러나지 않는 달콤한 디저트지만 섬유질 덩어리 무 말랭이에는 햇빛의 맛이 있다.
제철 생산된 생 무의 단단하면서 아삭한, 알싸한 맛도 좋아하지만 나는 햇빛과 바람, 시간이 만든 무 말랭이를 더 좋아한다. 버섯, 가지, 무 청 등 햇빛에 말리면 향이 더 진해지고 그 쫄깃한 식감은 날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아이들은 무가 아무 맛도 아닌 ‘무(無)’맛이고 물컹한 식감이라고 잘 먹지 않는다. 나도 어릴 때는 국물이나 조림의 무만 빼고 먹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니 슴슴한 무 본연의 맛도 좋고 다른 맛이 스며들어 어우러진 진정한 ‘무’의 맛을 알게 되었다.
무 말랭이를 오래 씹어 먹는다. 가을 햇살과 시간이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양념을 최소화하여 무 말랭이를 물에 불리고 무친다. 아이들은 무 말랭이는 양념 맛으로 먹는 건데 밍밍하다며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달콤, 매콤하게 해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음식은 집에서 만드는 사람 마음! ‘내 맘’대로 담박하게 만든다. 그러다 마음 약해져 결국엔 ‘식당용’과 ‘사찰용’,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게 된다. ^^*
나이가 들수록 생기는 변화 중 하나는 눈에 보이는 현상과 함께 숨겨진 이면도 보인다는 점이다. 음식을 보면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농부의 땀과 수고, 햇빛과 바람, 가뭄, 홍수 등 어려움을 겪고 성장한 생명체가 대견하고… 그걸 사서 다듬고 요리한 이의 수고로움도 보여 되도록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다.
두부를 썰 때마다 참 ‘상처받기 쉬운’ 수분 덩어리 식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렁한 질감이 감자 전분을 두르고 기름을 만나 경쾌하게 바삭해지기도 하고 만두 소로 들어가면 다른 재료와 융합되어 본 형태는 없어지지만 촉촉한 식감을 만들어준다. 탕 요리 속 하얀 네모 두부는 국물의 고유한 맛을 머금고 있는 부드러운 집적체이며 얼렸다 녹이면 푸슬푸슬한 밥의 식감을 선물한다. 재료 자체의 유연함이 다양한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하얀 무와 두부를 보면 옛 화론에 ‘하얀 바탕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란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아무리 잘나도 본바탕, ‘인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소용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공자님 말씀. 사람의 기본 자질인 ‘인(仁)’을 갖추라는 뜻인데… 내 이름에도 ‘인(仁)’이 들어가는데 이 기본은 언제쯤 갖춰지려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벌컥 화내며 평정심을 잃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대학교 화론 시간에 배울 때는 아무 느낌 없었던 그냥 ‘흰 바탕에 까만 글자’의 글귀였는데 이제 이렇게 마음에 와닿다니 시간이 흐르긴 한 것 같다.
화려한 색, 양념이 강하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다. ‘Back to the basic’. 음식의 기본 재료인 무와 두부는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순연의 맛도 있고 다른 맛을 감칠 맛있게 만드는 보조 역할도 한다. 평상심을 지키며 진정한 ‘기본’과 조용한 ‘보조’가 무엇인지 나에게 조용히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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