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그제도 엊그제도 선생님이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선생님이다

by 아름드리

하원시간 딩동 딩동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원장님 계세요? "


"네. 유리 어머님 잠시만요. 어머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선생님은 됐고요. 원장이랑 얘기 하고 싶어요"


원장님이 나오셔서 어머님을 맞이해 주셨다.


"원장님 우리 아이가 어제 집에 와서 보니 열이 펄펄 났어요.

어린이집에서도 열이 난 거 아니에요. 아픈 애를 왜 말을 안 해줘요?"


유리 엄마가 말했다.


"어머님 어제 하원할 때도 열을 체크했는데 열 없었어요.

오후 간식도 잘 먹고 하원할 때도 컨디션 좋았는데요"


속상한 마음에 내가 먼저 얘기해버렸다.


"아니 선생님하고 말하고 싶지 않다니까요. 담임 선생님이 애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제가 외국에 가야 되는데 애가 아파서 어떻게 가요.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요. 어쩔 거예요? 그냥 오늘 퇴소시켜 주세요 "


"네 어머님 퇴소 시켜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


"원장님이 죄송하다고 하니까 이만 할게요. 우리 아이 물건 챙겨주시고 선생님이 사과하셨으면 좋겠어요"


원장님이 나를 불렀다. 억울해서인지 시계의 초침처럼 끊임없이 눈물이 났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유리 열 체크 더 세심히 했었어야 하는데 유리를 아프게 한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유리가 병원에 입원했다니 제가 정말 죄송해요. 병원에 가볼게요. 어머님"


"됐어요. 병원에 올 필요는 없고요. 사과했으니까 유리 물건 챙겨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유리의 물건을 받아 들고 현관문을 꽝 닫고 유리 엄마가 돌아갔다. 아무리 열이 나지 않고 잘 놀았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과밖에 없었다.

모든 건 내 책임이라고 했다. 여러 번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는 내 모습이 공포물처럼 느껴졌다.


"원장님 정말 어제 유리 잘 놀았어요. 원장님도 보셨잖아요. 유리가 어제 이제 유치원 갈 거라고 말해서 유치원 가봤어?라고 물어보니까 유치원 구경 갔다고 했어요. 유치원 가려고 저렇게 말한 게 아니라 차라리 정말 아픈 거면 좋겠어요. 어제 하원할 때 밝게 웃고 간 유리가 아직도 기억나는데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다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사과하는 것도 억울한데 왜 학부모한테 어머님이라고 말해야 될까요? 진짜 보육교사는 너무 힘들어요. 얼마나 예뻐했는데 유리가 아프면 누구보다 걱정하고 슬퍼했어요 결국에는 이렇게 헤어지네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 선생님 울지 말고 외국 간다니까 우리 믿자. 어차피 헤어져야 했다고 생각해야 마음 편해"


원장님이 말을 들어도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우리 반 애들이 아프면 내 아이보다 더 걱정하고 아파했는데

오늘 내 자존감은 세상에서 제일 깊은 바다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가장 밑에 사는 물곰처럼 느껴졌다.

이놈의 눈물은 왜 안 멈추는 건지 눈물이 나는 게 창피했다.


다음날 아침 당직으로 이른 퇴근을 하고 아들과 함께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엄마 저기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다 가자"


아들의 말에 유치원으로 시선이 갔다.


"어머 저기 유리가 있네. 그런데 왜 유치원에서 나오지?"


나는 얼른 유치원 선생님께 유리에 대해 물었더니

오늘부터 유치원에 유리가 다니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유리가 입원했다면 오늘 유치원 못 갔을 텐데.....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싶었구나.

이제부터 유치원에 가게 됐다고 말해주지. 유리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이라도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린이집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닐까?'


어제의 찢어진 상처에 오늘의 깊은 상처가 더해진 것 같았다.

이 직업을 어제도 그제도 엊그제도 사랑했다. 오늘 입은 상처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엷어질 것 같았다.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아들이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엄마 속상해? 시장 가서 맛있는 거 사서 먹자.

엄마 맥주 좋아하니까 먹어. 맥주 먹고 힘내. 내가 엄마 사랑하잖아"


"그래 오늘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고 힘내자. 엄마도 사랑해"


어리고 여린 내 아들의 위로는 엷어진 나의 마음의 강력한 접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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